[수상한 新빌라왕: 제2의 전세사기 공포]④
전세사기 빌라 위험 고지 없이 계약 중개
"알고도 중개한 정황, 무거운 처벌 받아야"
지난 7월 공인중개사법 강화됐지만 역부족
"불완전한 부동산 중개제도, 전면 재검토 필요"
"중개사가 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 등 확인해야 하는 서류는 다 떼 주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집이라고 했다."(경기 부천의 30대 세입자 A씨)
"위험하다거나 계약하면 안 되는 집이라거나 그런 말은 없었다."(경기 부천의 20대 후반 김모씨)
이들이 들어간 빌라는 과거 전세사기로 임차권등기(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세입자가 법원에 신청할 수 있는 제도) 등 권리관계가 소멸하지 않아 위험성이 높은 집이었다. 그러나 계약을 중개한 중개인으로부터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해 이런 사실을 모른 채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세입자 죽으라고 불구덩이 밀어 넣는 꼴"
전세사기 피해 지역의 공인중개사들은 이 같은 중개 행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권리관계가 남아 있는 집은 임차인이 들어가서도 안 되지만 공인중개사가 소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부천 심곡동의 S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부동산(공인중개사)에서 그런(임차권등기가 설정된) 집에 들어가라고 얘기하는 건 정신이 나간 짓이다. (세입자를) 죽으라고 불구덩이에 밀어 넣는 꼴인데 그렇게 (중개)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천 T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도 "일반적인 전세 물건에 임차권등기가 설정된 경우라면 모를까 낙찰된 매물에 임차권등기가 있다면 절대로 들어가면 안 된다"며 "임차권등기보다 새로운 세입자의 권리가 후순위로 밀려 보증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라고 했다. 또 "이런 사실은 부동산에서도 중개 의뢰인에게 확실하게 얘기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주인이 거부하면 그만" 강화된 법도 한계
정부는 2022년 발생한 전세사기 사태에서 공인중개사가 ‘공범’으로 지목되면서 규제의 강도를 높였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전세사기 사태 이후 2년여간 특별단속을 벌인 결과 현재까지 집계된 전세사기 피의자 8323명 중 ‘공인중개사·중개보조원’은 2081명(25%)에 달했다. 피의자들을 다시 사기 유형으로 나눠 보면 ‘불법 중개·감정’이 1575명(18.9%)을 차지했다.
공인중개사의 확인·설명 의무를 더욱 강화한 개정안은 지난 7월부터 시행됐다. 등기부등본에 공시되지 않는 임차권 순위 등의 권리 사항도 공인중개사들의 확인 사항으로 규정하고 임차인에게 설명하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개정안도 전세사기에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미완의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한문도 숭실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사기 가담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음에도 여전히 중개인들이 교묘한 언어 사용으로 사기 행위가 아닌 것처럼 포장하고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다"며 "중개수수료는 챙기고 청년들이 사기를 당하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개사들이 법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된다고 해도 손해보다 이익이 더 크다. 현행법은 전세사기를 방조하는 사각지대가 많은 법규"라고 꼬집었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중개인의 설명·확인 의무를 강화하더라도, 집주인이 자신의 세금 체납 등 정보 제공을 거부하면 중개인이 다 확인할 수가 없기에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개인 입장에서는 중개보수를 받는 게 더 중요해 정보가 다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부동산 중개제도에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 교수는 "자질과 윤리의식이 부족한 중개사를 양산하는 불완전한 시스템은 재검토해야 한다"면서 "중개사의 중개 행위를 감독·평가할 수 있어야 하며, 계약 전(全) 과정에 대한 법적 검토가 국민에게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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