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부장판사 최규연)는 A씨(28·남)가 치과의사 B씨와 학교법인 이화학당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지난 10월 16일 "피고들은 공동하여 원고에게 2억8959만원과 이자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A씨는 21세였던 2017년 2월 14일 B씨가 운영하는 강남의 한 치과의원에서 양악수술을 받았다. 턱교정 수술과 광대 축소술, 턱밑 부위 지방흡입술 등을 함께 받는 수술이었다. 수술은 오전 10시10분경부터 오후 3시50분까지 5시간 40분가량 진행됐다.
회복실에서의 경과 관찰 과정에서 A씨는 약간의 오한과 수술 부위 통증을 호소하긴 했지만 2017년 2월 17일 특이호소 없이 퇴원했다.
이대목동병원 응급실 의료진은 혈압이 떨어지며 기면 상태(잠에 빠져드는 상태)가 된 A씨에게 수혈을 하고 수액을 투여하면서 뇌와 목 부위 CT 촬영을 했다.
새벽 3시께 실시한 CT 촬영 결과 좌측 하악골(아래턱뼈) 주변에 혈종이 발견됐고, 수술에 의한 외상으로 외경동맥분지에 가성동맥류(손상된 동맥에서 혈액이 흘러나와 조직에 피가 고이는 병) 발생 가능성이 있어 혈관조영술 확인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혈관조영술은 혈관 내에 조영제를 투입해 X선으로 파열된 혈관부위를 찾아 그곳에 색전물질을 넣어 막아주는 시술이다. 당시 A씨는 양쪽 상악동에 출혈이 있었고, 좌측 턱 부위에 대량의 급성 혈종이, 양측 볼과 좌측 하악골에는 부종이 나타났다.
응급실 의료진으로부터 협진 요청을 받은 치과(구강악안면외과) 의료진은 A씨에게 응급 전신마취를 한 뒤 2017년 2월 19일 새벽 5시20분부터 6시40분까지 출혈 부분에 대한 지혈술을 시행했다.
수술 직후 치과 의료진은 영상의학과에 ‘가성동맥류 여부 판단을 위해 상악동맥의 혈관조영상을 의뢰한다’는 내용의 협진 요청을 했다.
이날 새벽 5시20분부터 6시40분 사이 좌측 하악골 뒤쪽 지혈술 수술이 이뤄지기까지 A씨의 헤모글로빈 수치는 8.4에서 5.5까지 떨어졌다. 수술 이후 A씨는 쇼크가 발생, 침대가 흔들릴 정도로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A씨에게 코일을 이용한 색전술과 혈관조영술이 이뤄진 건 다음 날인 2017년 2월 20일 오후 4시에서 5시19분 사이였다.
2017년 2월 19일 새벽 7시경 A씨는 치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런데 이날 저녁 6시30분경부터 A씨는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다음 날인 2017년 2월 20일 오후 3시43분경 A씨는 혈관조영술 및 색전술을 받기 위해 혈관조영실로 옮겨졌다.
의료진은 2017년 2월 20일 오후 4시부터 오후 5시19분까지 혈관조영술과 함께 외경동맥가지인 내상악동맥의 가성동맥류를 코일을 이용해서 막는 색전술을 A씨에게 실시했다.
이후 A씨는 기립불능성 발작을 동반한 뇌전증, 좌측 상악동맥의 가성동맥류, 무산소성뇌손상, 난치성 뇌전증을 동반하지 않은 란스-아담스 증후군(일과성의 심정지나 극도의 저혈압으로 인해 뇌허혈 상태에 빠진 후에 회복된 경우 사지를 중심으로 미오클로누스가 생기는 것) 등 진단을 받았다. 미오클로누스란 10∼50밀리초(m second), 즉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내에 순간적으로 리듬이 없는 깜짝 놀라는 양상의 움직임을 의미한다.
A씨는 2019년 9월 애초 양악수술을 한 B씨와 이대병원 측을 상대로 2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소송은 수차례에 걸친 A씨의 진료기록에 대한 감정과 A씨에 신체감정으로 수년간 이어졌고, 판결 선고기일만 3차례나 변경된 끝에 소 제기 5년 1개월 만인 올해 10월 16일 원고 일부승소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양악수술 과정에서 B씨의 과실이 있었던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 같은 과실과 A씨에게 발생한 가성동맥류 사이의 인과관계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원고에게 발생한 가성동맥류는 피고 B씨가 이 사건 양악수술 등을 하면서 수술기구를 과도하게 조작하는 등으로 내상악동맥을 손상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에는 여러 의사나 단체의 진료기록 감정 결과가 근거가 됐다. 또 6시간 가까이 수술이 진행되면서 약 1000cc의 실혈량이 있었던 것과 관련 재판부는 "당시 수술시간이 비정상적이었다고 볼 정도는 아니더라도 통상의 경우보다는 길고, 실혈량도 통상의 경우보다는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사정은 수술 시의 과실을 뒷받침하는 간접적인 정황이 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B씨가 추적관찰의무를 불이행했다는 A씨 측 주장과 요양방법 지도설명의무를 위반했다는 A씨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재판부는 이대목동병원 의료진에 대해서는 A씨가 응급실로 내원한 이후 지혈술을 실시할 때까지 혈관조영술 등을 지연한 과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 병원 의료진은 2017년 2월 19일 새벽 1시39분 응급실에 내원한 원고를 같은 날 새벽 4시40분 수술방으로 옮겨 응급으로 이 사건 지혈술을 했는데, 피고 병원에 도착한 원고에게 즉시 혈관조영술과 색전술을 하지 않고 이 사건 지혈술을 했다고 해서 이를 과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양악수술 과정에서 내상악동맥이 손상돼 가성동맥류가 발생한 A씨에게는 혈관조영술과 색전술이 필요했고 실제 이대목동병원 의료진이 실시한 지혈술만으로는 완벽히 지혈이 되지 않기도 했지만 ▲최초 CT 촬영한 영상만으로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아닌 치과 의료진이 출혈이 발생한 혈관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확인해 수술적 술기로 어렵다는 것을 판단하지 못했다고 해서 과실로 보기는 어려운 점 ▲양악수술 후 내상악동맥에서 가성동맥류가 발생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어서 A씨가 양악수술을 받았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내상악동맥에서의 가성동맥류를 의심해야 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등을 근거로 재판부는 "이 사건 지혈술이 아닌 혈관조영술과 색전술을 하는 것이 적절했음이 사후적으로 확인됐다고 해서 이 사건 지혈술을 한 것 을 과실이라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반면 재판부는 의료진이 지혈술을 실시한 이후에 혈관조영술 등이 지연된 데 대한 과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 병원 의료진은 2017년 2월 19일 새벽 6시40분 이 사건 지혈술을 마친 후 중환자실에서 원고를 관리하면서 다음 날인 2017년 2월 20일 오후 4시에 이 사건 색전술을 했다"라며 "이처럼 이 사건 색전술은 이 사건 지혈술 후 약 33시간이 지나서 이뤄졌는데, 이는 피고 병원 의료진이 원고에게 내상악동맥 손상에 의한 가성동맥류의 발생 여부를 의심하고도 신속한 혈관조영술과 색전술을 지연한 과실이라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이미 대량 출혈이 발생해 응급실로 온 상태였는 데다가 응급실에 있으면서 두 차례 기면 상태에 빠지기도 했고, 수혈에도 불구하고 헤모글로빈 수치는 여전히 낮아서 내원 당시의 수치에도 미치지 못했던 점 등을 감안하면, 설사 지혈술로 어느 정도 지혈이 됐더라도 조속히 혈관조영술을 실시해 가성동맥류 발생 여부를 확인하고 폐색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봤다.
또 재판부는 ▲비록 A씨가 처음 이대목동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날(2017년 2월 19일)이 일요일이라 혈관조영술을 할 수 있는 영상의학과 의료진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의료진이 영상의학과 의료진을 물색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다고 볼 만한 사정을 찾기 어려운 점 ▲설령 내원한 날이 일요일이어서 즉시 조치를 취하기 어려웠다면 다음 날 오전에라도 곧바로 혈관조영술을 하도록 조치할 수 있었는데, 최초 CT 영상에 대한 영상의학과 의료진의 판독도 다음 날(2017년 2월 20일) 오전 10시42분에야 이뤄진 점 ▲CT 영상 판독상 다발성 가성동맥류가 있는 것으로 의심돼 혈관조영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음에도 실제 색전술은 그때부터도 5시간 이상 지난 오후 4시경에야 이뤄진 점 등을 근거로 들며 "영상의학과 의료진이 없어서 혈관조영술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원고가 보이는 증세가 가성동맥류의 파열에 의한 대량 출혈 때문임을 의심하지 못했거나 그 응급성의 정도 등을 잘못 평가해 혈관조영술을 즉시 시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지혈술 이후 A씨에게 발작이 계속되고 구강내출혈이 확인돼 그때마다 의사에게 보고가 됐는데도, 간호 기록상 아티반(진정제)을 투여했다는 내용만 남아있는 것으로 볼 때 파열된 가성동맥류를 막기 위해 의료진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대목동병원 의료진이 충분한 수혈을 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는 A씨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 B씨는 이 사건 양악수술 등을 하면서 수술기구를 과도하게 조작하는 등으로 내상악동맥을 손상한 과실로 가성동맥류를 발생시켜 원고가 저산소성 뇌손상 등으로 입은 손해에 대해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또 "피고 법인은 피고 병원 의료진이 가성동맥류 파열에 대해 색전술 등 필요한 조치를 지연한 과실로 원고가 저산소성 뇌손상 등으로 입은 손해에 대해 진료계약의 주체로서 채무불이행책임 또는 사용자로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의 손해는 피고 B씨의 과실과 피고 병원 의료진의 과실이 경합해 발생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피고 B씨와 피고 법인은 공동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진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양악수술을 한 의사 B씨에 대해서는 설명의무 위반에 따른 정신적 손해배상(위자료) 책임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양악수술 중 내상악동맥이 손상해 가성동맥류가 발생하는 것은 통상적인 술식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심각한 합병증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므로, ‘내상악동맥 손상’이나 ‘가성동맥류 발생’과 같은 구체적·전문적인 내용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 사건 양악수술 등 과정에서 동맥 손상으로 지연성 대량출혈이 발생할 위험 등은 그 발생가능성의 희소성에도 불구하고 설명의 대상이 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제출된 증거들만으로 피고 B씨가 원고에게 이 사건 양악수술 등으로 가성동맥류가 발생해 지연성 대량출혈이 발생할 위험을 설명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가 원래 갖고 있던 정신의학과적 문제와 음주 습관 등을 고려해 B씨와 이화학당의 과실 비율을 70%로 제한했다. 정신적 손해배상액은 2000만원으로 산정했다.
이번 소송에서 A씨를 대리한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는 "치과의사가 미용성형 목적 양악수술 시 출혈 위험을 고지 않은 설명의무 위반 책임과 수술 후 지연성으로 발생한 출혈에 대해서도 과실책임을 인정한 점, 대학병원 응급실의 업무분장상 과실책임이 인정된 점(상악동맥 출혈이므로 이비인후과, 영상의학과 등 양의사가 진료해야 함에도 치과 수술이라는 이유로 치과에서 응급처치를 하는 바람에 양의사로부터 색전술을 2일 이상 지체돼 받아 저산소성 뇌손상을 발생케 한 진료상 과실), 치과의사와 대학병원이 연대해 공동불법행위책임이 인정된 점 등에 특색이 있다"고 이번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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