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 겸 경영진 찰스 스포크…96세로 사망
美, 지금은 제조 공급망 자립화 추진 중이지만
"해외 이전으로 美 생존…고임금 일자리 창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반도체 제조 시설을 미국에서 아시아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스포크의 삶을 돌아보는 기사를 보도했다. WSJ는 "세계화가 정치 화두로 떠오르기도 전, 세계화를 옹호한 인물"이라며 "그는 값싼 노동력과 원자재 확보 등을 이유로 생산 거점을 해외로 이전하는 오프쇼어링이 미국 반도체 산업에서 더 많은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 주장했다"고 전했다.
1927년생인 그는 코넬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1950년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스포크는 이미 이 시기부터 제조공정의 해외 이전에 관심을 보였다. 당시 상사가 공장 효율화를 모색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내놓은 답이 해외 이전이었다. 아시아 국가들은 노동력이 저렴한 데다 제조 속도도 빨라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는 아이디어였다. 다만 그의 생각은 노조의 격한 반발에 부딪혔고, 경영진은 결국 그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일을 포기한다.
그렇게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을 방문한 스포크는 급여를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면서도 더 빨리 제품 제조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겠다고 판단, 1963년 홍콩 공장을 구축했다. 뒤이어 스포크는 싱가포르에도 공장을 추가해 반도체 설계는 미국에서 진행하되 조립과 테스트는 아시아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조치했다.
1967년 스포크는 소규모 반도체 업체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내셔널세미컨덕터의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옮겼다. 1970년대 반도체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회사가 영업력을 확장했고 스코틀랜드와 동남아시아에 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1980년대 일본과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폭락했고 회사는 큰 손실을 냈다. 이 무렵 스포크는 반도체 시장에서 치열해진 경쟁에 승리를 거두려면 보조금이 필요하다고 판단, 미국 정부를 설득해 이를 받아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스포크의 은퇴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그를 '반도체 산업의 개척자'라고 표현하면서 "미국 반도체 산업의 위대한 승리와 최근 겪는 문제를 모두 반영한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1996년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스포크에 평생 공로상을 수여했다.
한편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반도체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미국은 현재 반도체 제조시설을 확충하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업체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의 반도체지원법을 바탕으로 반도체 공급망의 자립도를 높이려고 한다. SIA가 올해 5월 발표한 반도체 공급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반도체 제조 비중은 미국이 2022년 기준 10%였으며, 아시아(한국·중국·일본·대만)는 76%에 달했다. 미국은 제조 시설을 자국에 확보해 2032년 비중을 14%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럴 경우 아시아의 제조 비중은 72%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과거에는 반도체 강국이었지만 미국 밖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한 탓에 결국 지금은 반도체 주도권을 아시아에 빼앗겼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스포크도 과거 공장 해외 이전을 추진할 당시 '미국 가전제품 제조의 종말이 시작됐다'는 비판에 부딪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추후에 제조 공정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미국 반도체 산업이 되레 생존할 수 있었고, 더 많은 고소득 엔지니어 일자리가 창출됐다고 반박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전쟁을 조명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칩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그 누구도 세계화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없는 시기에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아시아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함으로써 세계화를 이뤄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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