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하반기 문재인 정부는 집값 상승에 이어 코로나19 구제금융으로 가파르게 늘어난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금융사별로 대출 증가율을 최대 6%로 제한하는 이른바 ‘대출 총량규제’를 단행했다. 치솟는 집값을 잡아보겠다는 목적과 함께 그 여파로 1600조원을 넘어 가파르게 늘어나는 가계대출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대출 총량규제 시행과 함께 관치 논란이 일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의 선택권을 빼앗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금융소비자 단체는 금융소비자를 규제하는 반시장적 정책이라는 비난을 했고, 국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국민의힘 의원은 “무식한 총량규제를 진행했고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날을 세우기도 했다.
이전 정부와 정반대 정책을 택한 윤석열 정부 3년 차. 다시 가계대출이 말썽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자산 가격 상승세에 따라 가계대출 잔액이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우려는 더욱 커졌다. 이제는 1800조원을 넘어선 가계대출 잔액을 바라보며 적기에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쓰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과 ‘외부충격-차주 부실 확대-금융사 부실전이-금융시스템 붕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걱정하는 시각도 많아졌다.
금융당국은 딜레마에 빠졌다. 대출 규제 완화를 천명했던 윤 정부의 기조를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러면서도 현 정부가 시장과 자유를 강조해온 만큼 ‘관치’라는 지적을 받아서는 안 됐다. 그 때문에 이전 정부처럼 가계대출 증가율을 관리하겠다며 ‘숫자’를 제시할 수 없었고, 주택담보 대출 금리와 대출 상품 취급 등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도 해서는 안 됐다.(그렇게 탄생한 것이 '자율 관리'라는 기조였다.)
여기에 대출금리 인상과 대출상품 취급 중단으로 가계부채 관리에 나선 금융사를 향해 때마다 내뱉은 금융당국의 비판적 메시지는 자율 관리라는 애초의 명분을 의심케 했다. “차라리 명확하게 가이드라인을 줬으면 좋겠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금융당국의 행보에 이 같은 반응으로 답답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금융권에선 이제 금융당국의 자율 관리 방침을 ‘사실상 대출 총량규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사실상 관치’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2021년 10월26일에 발표된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과 큰 틀에서 궤를 같이하는 수순으로 향하고 있음에도 금융당국은 각종 지적에 인정도 적극적인 대응도 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고 있다. 속내는 추정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이쯤 됐으면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정부의 개입 필요성을 인정하고 더욱 명확한 정책목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시장에 일관된 시그널(신호)을 주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정책대출 관리에 대해서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조성하기보다 금융소비자들이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게 더 낫다는 의견도 있다.
‘관치’라고 불리는 정부의 개입도 필요한 상황과 때가 있다. 금융권이 잘못하면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정부가 해야 하는 게 지속가능한 국가시스템의 원리이기도 하다. 가계부채 관리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중대한 문제다. 국민경제를 위해서라면 이전 정부에서 했던 정책이면 어떠하고, 방향을 바꾸면 또 어떠한가. 당장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레토릭으로 모면해보려는 모호한 행보가 미래엔 더 큰 부담을 안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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