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복지부, 어떻게·얼마나 지원됐는지 몰라
중앙 컨트롤타워 없어 난임 시술비 지원 통계 無
"2022년 지방이양하면서 지자체 각각 관리"
대표적인 난임 정책인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 사업이 컨트롤타워 부재 속에 각 지역별로 제각각 추진되면서 중앙 정부는 내용 취합조차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천억 원의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정책인데도 불구하고 지역별 서로 다른 추진 내용에 대한 정보가 흩어져 있고, 통계 기준마저 제각각이어서 향후 국가 차원의 난임 정책을 마련하는 데도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저출산 문제 심화로 난임 정책의 중요성이 커진 상황을 고려할 때 정부가 이를 총괄해 통합적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난임 정책 데이터 제각각…통계 관리 허술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아시아경제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17개 광역시·도 자치단체별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사업 관련 데이터를 요청하자 "2022년부터 지방이양으로 기관이 보유·관리하지 않는 정보"라며 '정보 부존재'를 알렸다. 현재 국가의 난임 시술비 지원 정책이 정부와 지자체에서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만큼, 중앙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지자체의 추진 내용까지 총괄하지 않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동시에 17개 광역 시·도에서 관리하는 시술비 지원 관련 데이터 항목도 지자체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취재 결과 난임 시술 지원 건수, 인공수정·체외수정 등 세부 시술 구분, 지원 인원수, 난임 시술을 통한 임신 건수 등 시술비 지원과 관련한 보유 데이터 세부 사항이 제각기 달랐다. 지자체마다 지원하는 내용이 다르다고 해서 정책 결정의 기반이 되는 통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향후 정책 수립에 기존 정책 효과를 활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김명희 한국난임가족연합회 회장은 "미국의 경우 난임 시장이 의료보험이 안 되는 사보험 또는 자유 시장에 의존하지만, 통계 관리만큼은 법적으로 국가에서 하고 있다"며 "통계가 정확해야 예산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의료기관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등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국민인데 차별"…지자체가 각각 쏟아내는 난임 정책
통합 관리하는 난임 시술비 지원 통계가 없다는 것은 현재 국내 난임 정책이 컨트롤타워 부재라는 한계에 봉착해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 지방 난임 부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난임 정책의 격차가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힘 빠지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호소한다. 난임 치료는 사실상 전국 단위로 이뤄지고 있지만, 대표적인 난임 정책인 시술비 지원 사업이 2022년 지방으로 이양되면서 지자체별로 서로 다른 정책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의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 사업은 2006년 시작됐다. 처음에는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130% 이하의 난임 부부에 대해 1회 150만원 범위 내 2회 체외수정(시험관) 시술비를 지원했다.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대상자와 지급 횟수를 꾸준히 확대했고, 2017년 난임 시술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했다. 건강보험 적용을 계기로 2022년 시술비 지원 사업은 국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일부 이양됐다. 지자체가 지원 기준과 규모 등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는 난임 시술비를 ▲건강보험 ▲정부형 ▲지자체형 등 세 가지로 구분해 지급하고 있다.
난임 정책과 관련한 지역 격차 논란은 지방 이양 직후 곧바로 생겨났다. 지자체별로 시술비 지원 대상 기준, 지원 규모 등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난임 부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건강보험을 제외하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과 본인부담금 의료비를 지원하는 정부형과 지자체형 지원은 지자체별로 차이를 둔다. 정부형의 지역 격차 논란이 커지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나서서 전국 17개 광역 시·도와 협의에 나섰고, 올해부터 소득 기준을 모두 폐지하게끔 조정했다.
지자체마다 다른 지원금…"난임은 국가 문제"
하지만 여전히 정부형과 지자체형 지원 모두 지역별 격차가 남아있다. 아시아경제가 17개 광역 시·도의 정보공개청구 답변 자료와 홈페이지 등 공개 정보를 통해 확인한 결과 난임 부부에 대한 정부형 시술비 지원은 17개 시·도 가운데 7곳만 지원 대상 기준에서 연령과 소득 제한, 시술별 칸막이를 모두 없앴다. 10곳은 만 45세를 기점으로 연령 기준을 두거나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신선·동결배아 이식) 방식에 따라 지원 횟수 등 칸막이를 남겨뒀다.
경북, 광주, 대구, 전남, 전북 등 5개 시·도의 경우 건강보험과 정부형 지원 외에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해 추가로 시술비를 지원하고 있다. 정부형 지원금에 추가 금액을 지급하거나 건강보험 적용 횟수가 끝난 시·도민을 대상으로 추가 지원하는 식이다. 대구의 경우 시에 6개월 이상 거주한 44세 이하 여성이 신선배아로 시험관 시술을 할 경우 1회당 최대 지원금 170만원(총 16회)을 받게 된다. 정부형 지원을 받는 동일 조건의 여성이 받는 지원 금액에 1회당 60만원을 추가 지급하는 것이다.
올해 초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통해 신설된 한방 난임 지원 사업도 지자체별로 지원 여부와 규모, 횟수, 대상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지역별로 별도 조례 등을 신설해 정책을 추진하곤 했다. 현재 경기를 비롯한 10개 시·도에서 한방 난임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원도와 충북도는 관내 일부 시에서 한의약 난임 치료 지원을 하고 있다.
정부가 일부 난임 지원 정책을 지방으로 이양하면서 이 과정을 논의하기 위한 절차는 마련돼 있다. 지자체가 난임 지원 제도를 변경, 확대할 경우 보건복지부에 사회보장제도 협의를 요청하고 이를 거쳐 최종 확정, 진행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난임 관련 사회보장제도 협의 요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9월 10일까지 지자체에서 보건복지부에 37건의 협의를 요청했고 17건을 완료했다. 대부분 난임 시술비 지원 사업과 관련해 변동 사항을 조정하는 내용이었으며 남성 난임 시술비 지원 사업, 교통비 지원, 한방 난임 지원 사업 신설 등이 논의됐다.
다만 이러한 절차만으로는 지자체간 격차 해소가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이 이어진다. 지자체별로 재정 여건이 다른 만큼 그에 따른 난임 부부의 정책 수혜 정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재정 분권 정책과 지방이양 사업 평가 보고서에서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 사업이 지방으로 이양되면서 재정부담과 지자체의 선호도 등에 따라 지역별로 지원 혜택에 편차가 발생하고 있다"며 "난임은 지역 문제가 아니라 국가 문제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우선 정부와 지자체가 각각 난임지원 제도를 도입하면서 발생하는 정책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은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달 초 제도 개선을 위해 전국 지자체에 관련 난임지원 제도 운영 현황 실태조사를 위해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또 국민신문고에서 '수도권 등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난임 의료기관 접근성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권익위 관계자는 "난임지원 제도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서류를 불필요하게 많이 제출하는 등 행정적으로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제도개선을 추진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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