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보유 자사주 84% 신설 재단에 무상증여
정몽원 회장 등 최대주주 지분율 31% 불과
시장선 반대 목소리…학계 "배임 우려"
"사회 환원은 개인 지분 팔아서 하시고 자사주는 소각하세요."
정몽원 회장이 이끄는 HL홀딩스 가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취득한 자사주의 84%가량인 47만여주를 신설 재단에 무상으로 증여한다고 밝히면서 주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정 회장 측 지분이 31%에 불과한 상황에서 경영권 분쟁에 대비해 자사주를 개인 소유의 자산처럼 활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가 3분기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데다, 장부상 손실이 불가피해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기조'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통상 기업이 재단에 자사주를 넘기는 것은 경영권 분쟁 시 지배주주 우호 지분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자사주는 의결권 없는 주식이지만, 재단에 넘길 경우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HL홀딩스의 최대주주인 정몽원 회장의 지분율은 특수관계인 포함 31.58%다. 나머지 주요주주로는 VIP자산운용(10.41%), 베어링자산운용(6.59%), 국민연금공단(5.37%) 등이 있다. 최대주주 이외 주주들의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최근 정몽원 회장의 두 딸인 오너 3세들이 지분을 늘린 것도 경영권 방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시장에선 추정한다. 정몽원 회장의 장녀 정지연 씨와 차녀 정지수 씨는 올해 1월 각각 지분 0.6%를 장내 매수해 각각 1.14%로 지분을 확대했다.
이번 자사주 재단 출연이 주주들의 불만을 폭발시킨 배경에는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존재한다. HL홀딩스의 주가는 18일 기준 3만3850원으로 2014년 12월 말 종가 6만9500원 대비 절반 수준에 그친다. 주식도 저평가돼 있다. HL홀딩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2024년 기준 0.30배에 그친다. PBR이 1배 미만이면 회사가 자산을 모조리 매각하고 사업에서 손을 떼는 것보다도 현 주가가 싸다는 의미다. 코스피지수(0.85배), 코스피200(0.84배)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올해 3분기는 어닝쇼크 수준의 성적표를 받았다. 3분기 연결기준 지배주주순손실은 229억원으로 증권가 추정치(108억원)를 크게 하회했다. 1~3분기 누적 기준 지배주주순이익도 300억원으로 급감해 주가 전망도 어둡다.
대주주와 경영진을 견제할 사외이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했다는 주문도 나온다. 이번 자사주 처분 규모가 160억원어치로 상당액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교수는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 수단이 부족해지면서 이런 문제 소지가 있는 방법을 활용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면서 "중요 자산의 처분에 관한 사항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사들이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다른 교수는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지배권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며 "재단 출연은 예전 자사주 취득 목적과도 부합하지 않아 배임까지도 갈 수 있는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HL홀딩스 관계자는 이런 우려에 대해 "재단 설립 후 최소 5년 동안 의결권 행사는 하지 않을 것으로, 구체적인 사항은 재단 이사회에서 논의 후 정관에 반영할 예정"이라며 "본래의 설립 의도와 다르게 해석된 점이 아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사주 취득 자체가 주주가치 제고로, 체계적인 사회 환원을 위해 비영리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므로 무형의 기업가치와 중장기적 주주가치 제고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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