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HL홀딩스는 지난 11일 이사회 결의를 거쳐 현물로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56만720주 중 84%에 해당하는 47만193주를 신설 재단법인에 무상으로 출연하기로 했다. 회사는 나머지 16%에 해당하는 자사주 9만527주만 소각할 예정이다. 재단법인에 무상출연하는 자사주 47만여주를 현금으로 환산할 경우 18일 종가 기준 160억원어치에 해당한다. 이는 실제 출연될 때 160억원 상당이 손실로 잡힌다는 의미다. 이 경우 회사 전체의 이익이 줄어들면서 주당순이익(EPS), 즉 주식 1주당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회사가 2020년과 2021년 두 차례 자사주를 취득할 때 내건 '주주 친화 정책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 목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통상 기업이 재단에 자사주를 넘기는 것은 경영권 분쟁 시 지배주주 우호 지분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자사주는 의결권 없는 주식이지만, 재단에 넘길 경우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HL홀딩스의 최대주주인 정몽원 회장의 지분율은 특수관계인 포함 31.58%다. 나머지 주요주주로는 VIP자산운용(10.41%), 베어링자산운용(6.59%), 국민연금공단(5.37%) 등이 있다. 최대주주 이외 주주들의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최근 정몽원 회장의 두 딸인 오너 3세들이 지분을 늘린 것도 경영권 방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시장에선 추정한다. 정몽원 회장의 장녀 정지연 씨와 차녀 정지수 씨는 올해 1월 각각 지분 0.6%를 장내 매수해 각각 1.14%로 지분을 확대했다.
이번 자사주 재단 출연이 주주들의 불만을 폭발시킨 배경에는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존재한다. HL홀딩스의 주가는 18일 기준 3만3850원으로 2014년 12월 말 종가 6만9500원 대비 절반 수준에 그친다. 주식도 저평가돼 있다. HL홀딩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2024년 기준 0.30배에 그친다. PBR이 1배 미만이면 회사가 자산을 모조리 매각하고 사업에서 손을 떼는 것보다도 현 주가가 싸다는 의미다. 코스피지수(0.85배), 코스피200(0.84배)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올해 3분기는 어닝쇼크 수준의 성적표를 받았다. 3분기 연결기준 지배주주순손실은 229억원으로 증권가 추정치(108억원)를 크게 하회했다. 1~3분기 누적 기준 지배주주순이익도 300억원으로 급감해 주가 전망도 어둡다. 이런 상황에 개인 주주들이 모인 네이버 종목토론실 등에선 불만이 쏟아져나왔다. VIP자산운용, 베어링자산운용 등 기관투자자들도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주주서한과 비공개 회의 등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밸류업 정책을 강조하는 마당에 대주주 지분권 방어나 대주주 지분가치를 높이는 데만 신경 쓰는 게 아쉽다"며 "소액주주의 가치 보호를 위한 결정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2대 주주이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회사의 결정을 막을 수 없는 무력한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주주와 경영진을 견제할 사외이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했다는 주문도 나온다. 이번 자사주 처분 규모가 160억원어치로 상당액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교수는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 수단이 부족해지면서 이런 문제 소지가 있는 방법을 활용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면서 "중요 자산의 처분에 관한 사항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사들이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다른 교수는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지배권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며 "재단 출연은 예전 자사주 취득 목적과도 부합하지 않아 배임까지도 갈 수 있는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HL홀딩스 관계자는 이런 우려에 대해 "재단 설립 후 최소 5년 동안 의결권 행사는 하지 않을 것으로, 구체적인 사항은 재단 이사회에서 논의 후 정관에 반영할 예정"이라며 "본래의 설립 의도와 다르게 해석된 점이 아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사주 취득 자체가 주주가치 제고로, 체계적인 사회 환원을 위해 비영리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므로 무형의 기업가치와 중장기적 주주가치 제고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