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과정에서 여론조작 벌어질 수 있어
번호섞기, 가중값 조작 등 수법 다양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성 떨어져
여러 차례 선거를 치러봤다는 보좌진 A씨는 명태균씨 여론조사 조작 논란 등을 겪으면서 과거 한 여론조사업체로부터 받았던 제안이 떠올랐다. 약 3000만개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고 소개한 이 업체 관계자는 데이터를 활용해 응답률이 좋은 사람들로 여론조사를 돌려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꼬드겼다는 것이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만 분류해줄 수도 있다는 제안도 있었다. 거절 의사를 밝혔던 A씨는 "선거 때는 간절한 마음탓에 혹할 수 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여론조사 조작, 어떤 수법들이 있을까.
여론조사 업계 관계자와 정치권에 따르면 여론조사 전 단계에서 이른바 '번호 섞기'와 '문항 및 순서효과'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번호 섞기'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위위원회(여심위)가 통신사로부터 받아 여론조사 업체에 제공한 가상 번호인 '안심번호'나 여론조사 업체의 무작위 추출 방식(RDD) 등으로 마련된 번호와 함께 여론조사업체가 이미 확보한 전화번호를 섞어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방법이다. 섞는 번호는 이미 지지 성향을 확인한 '검증된 번호'이거나, 후보자의 가족 등 지지 의사가 확인된 동원된 인사들로 채워질 수 있다. 이처럼 모집단 자체를 조작할 경우 여론조사는 원하는 결론에 가까운 결과로 갈 수 있다. 여론조사업계에서는 이 같은 행위를 범죄 행위로 보고 있다.
이런 조작을 막기 위해 여론조사 모니터링 등을 실시하고 있지만, 조작을 시도할 유인이 충분하다. 감시망이 느슨한 데다, 처벌도 솜방망이이기 때문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108조에 따르면 선거 관련 여론조사의 경우 6개월간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해당 자료 등을 폐기해도 공직선거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6개월만 지나면 조작의 증거는 사라진다. 그뿐만 아니라 여심위에서 자료 제출 등을 요구하지 않는 한 검증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여론조사 관계자는 "(조작 여부는) 로 데이터(raw data)를 받아봐야 알 수 있다"면서 "노련한 사기꾼들이라면 장난질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여심위 관계자도 "모니터링을 하지만 선거 기간 같은 경우 여론조사가 다수 진행되는 데다, 공표 30분 전에도 등록하는 일 등이 있어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가상 양자 대결을 한다며 일부 후보만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거나, 후보자 지지도 조사를 한다면서 '단일화 관련 문항' 등이 들어가는 경우 여론조사는 영향을 받는다. 단일화 등이 질문 조항이 들어갔을 경우, 단일화 후보 등으로 거론된 지지층의 응답률이 올라가지만, 관련 없는 후보들 지지자는 전화를 끊을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도 거의 비슷한 조사 설계에서도 이런 문항의 차이만으로 여론조사 결과가 판이하게 나타난 적이 있다. 김봉신 메타보이스 이사는 "여론조사 문항에 대한 현재 여심위의 규제는 기계적인 측면이 있다"며 "맥락적으로 문항을 심사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외에 문항 순서 등이 영향을 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령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도 대통령 지지율 관련 질문이 정당 지지율보다 먼저 질문이 나오느냐, 뒤에 나오느냐에 따라서 여론조사 결과가 달라진다는 분석이 정치권에 줄곧 있었다. 대통령이 먼저 거론되면 개별 정당뿐 아니라 집권 여당을 의식하고 응답자가 답하지만, 대통령 관련 질문이 뒤에 있으면 순수하게 정당 간 여론조사가 이뤄지는 식이다.
여론조사 이후에도 조작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업계에서는 사후 단계에 여론조사를 조작하는 방법과 관련해 조사 결과 자체에 손을 대는 방법과 함께 가중값 조작 가능성을 꼽는다. 응답률이 낮은 여론조사의 경우 응답자의 구성과 실제 인구 구성 비율의 차이가 크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서 인구 비율과 같게 만드는 과정을 '가중 처리'라고 부른다. 여심위의 '선거여론조사기준'에 따르면 이 비율은 성별, 연령별, 지역별로 가중값에 따라 보정 절차를 거치는데, 비율은 최대 1.5배, 최소 0.7배로 제한된다. 하지만 지역 간, 세대 간 견해 차이가 큰 점을 고려할 때 가중값을 임의로 조정할 경우에 여론조사 방향은 다른 결과가 될 수 있다.
신뢰성 위기에 직면한 여론조사
조작과 무관하게 여론조사가 과연 여론을 대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그동안 여론조사 업계와 학계에서는 여론조사 기관 등에 따라 응답자들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우스 이펙트(house effect)라 불렀던 이 효과와 관련해, 그동안 여론조사 의뢰 기관의 성향이 응답자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의뢰 기관이 보수 언론이냐, 진보 언론이냐에 따라 응답자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데 최근에는 의뢰기관보다 여론조사 업체에 주목하는 경향이 커졌다. 여론조사 업체를 단순한 조사의 대행 기관이 아닌 정치적 행위자로 보기 시작했다. 대표적 예가 친야 성향으로 알려진 '여론조사 꽃'이다.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이 회사의 여론조사에 대해 보수 성향 지지자들은 거부감이 커, 하우스 이펙트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체뿐 아니라 응답자들을 동원해 여론조사를 왜곡할 수도 있다. 가령 정당 공천 관련 여론조사의 경우 후보자들은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02-XXX-XXXX로 시작되는 전화를 받아달라’며 번호를 특정하거나 아니면 '02 또는 070으로 오는 전화는 받아달라'고 문자 메시지 등을 보낸다. 낮은 응답률을 감안하면 이런 독려만으로도 동원 효과는 상당하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일부 후보의 경우 응답률이 낮은 특정 연령대로 거짓 응답해 달라고 지지층을 선동, 유도해 재판받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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