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 2499만㎡는 주인이 없다
텅 빈 산단 97개…토지 분양 하나도 못해
새로 짓기 경쟁에 기존 산단은 방치
산단 37%가 20년 넘은 '노인 산단'
산업단지 안쪽도 상황은 비슷했다. 인도는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 보도블록 사이로 잡초가 자라고 있었고, 입주기업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은 모두 공란으로 남아 있었다. 산업단지 도로는 텅 비었고, 부지는 공장보다 방치된 노지가 더 많은 상황이다. 입주기업을 찾지 못한 부지에는 잡풀과 사람 키를 넘는 잡목만 자라고 있었다.
600명 고용이라더니 92명뿐…절반 넘게 미분양
2021년 4월 준공됐지만 초기 분양 실적은 저조했다. 분양 면적 49만9649㎡ 중 17.5%인 8만7679㎡만 분양됐다. 올해 2분기 말까지도 분양 면적의 43%에 불과한 20만7000㎡ 규모만 분양을 마쳤다. 이마저도 분양계약을 한 16개 업체 중 6개 업체만 가동되고 있다. 고용인원은 92명으로 당초 보령시 예상의 15%에 불과하다.
웅천산업단지의 한 입주업체는 보령시의 말 바꾸기도 저조한 분양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건어물업체인 파란해의 장경석 대표는 "당초 수도권에서 웅천산업단지로 이전하면 중소기업은 토지 매입비의 30%, 시설 투자비의 14%를 지원한다고 했지만 나중에 말을 바꿨다"며 "보령시가 마음대로 지원 조건을 바꿨다는 소문이 퍼지며 입주 의향이 있던 기업도 이를 철회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가락동 수출센터에 있던 파란해는 사업확장을 위해 공장 이전을 검토하던 중 웅천산업단지를 알게 됐고 보령시 직원이 직접 사무실로 찾아와 이전 혜택을 안내했다. 장 대표는 "당시 지원 조건을 계약서에 명시해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해서 여러 차례 구두로만 약속했는데 이를 믿은 것이 화근"이라며 "공장을 70% 이상 지은 시점에서 지원조건이 전체 면적이 아닌 건폐율, 즉 건물면적 기준이라고 말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이 탓에 파란해는 전체 부지 9000㎡가 아닌 공장건물이 들어선 4600㎡를 기준으로 보조금을 받게 됐다. 장 대표는 "계약 당시에는 17억80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8억원 수준으로 줄었다"며 "시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보령시는 "소송이 진행 중인 사항으로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답변을 피했다.
97개 산단은 분양실적 0, 미분양에도 계속 지었다
11일 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전국의 산업단지는 1315개, 지정된 면적은 14억5482만㎡에 달한다. 분양 면적 6억1922만㎡ 중 4%가량인 2449만㎡가 입주기업을 찾지 못해 미분양됐다. 여의도(450만㎡)의 5.44배에 달하는 산업단지가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주인을 찾지 못한 산업단지 면적은 지난해 3분기 2082만㎡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었지만 이후 올해 2분기 2499만㎡로 9개월 만에 367만㎡의 미분양 부지가 더 생겼다. 같은 기간 26개의 산업단지가 새로 조성됐다. 미분양 부지를 그대로 남겨둔 채 새로운 산업단지를 계속 지었다는 뜻이다. 전국에 조성 중이거나 조성 완료된 97개 산업단지는 토지를 단 한 곳도 분양하지 못했다.
새로운 산업단지를 짓는 데에만 몰두하면서 기존 산업단지는 늙어가고 있다. 올해 6월 기준으로 착공일로부터 20년이 경과한 노후산업단지는 전국에 487곳에 이른다. 1315개 전체 산업단지의 37%가 20년이 지난 산업단지다. 지난달 말 대표적인 노후 산업단지인 대전산업단지를 찾았다. 퇴근 시간인 6시께 대전산업단지는 가로등이 거의 없어 산업단지 전체가 컴컴했다. 도로는 주차된 화물차와 승용차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가뜩이나 어두운 길을 막아선 화물차 사이로 위태롭게 지나고 있었다. 산업단지에서 화물차 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모씨(68)는 "산업단지 도로는 새벽까진 화물차가, 이후에는 출근한 직원들의 승용차가 차지하고, 곳곳에는 폐업한 회사의 화물차가 방치돼 있다"며 "내가 33년 근무했는데 이 상황이 과거와 똑같다"고 했다.
산업단지의 미분양과 노후화 등 여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년 전인 2005년 산업단지공단이 발간한 '산업단지 현황 및 정책과제' 보고서도 "지역별 수급불균형과 기반시설 노후화 및 난개발로 인한 단지환경 악화 등 대내외 산업환경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점은 2024년 현재도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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