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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타그램]다른 모든 날들과 아주 비슷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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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의 시라야마는 사진을 어떻게 골랐을까?

빔 밴더스 감독 영화 ‘퍼펙트 데이즈’(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중요한 스포일러가 없다. 그조차 이 영화에서는 별 의미 없다)의 주인공 시라야마는 도쿄 시부야의 화장실 청소하는 일을 한다. 일하는 날은 매일 신사 앞 벤치에서 점심으로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고, 올림푸스 ‘뮤’ 필름 카메라로 나무를 올려다보며 사진 한 장을 찍는다. 그가 찍은 것이 나무인지 햇빛인지 바람인지 이 모두인지 말하기 어렵지만, 단 하나 그가 있는 자리인 ‘현재’라는 건 분명하다. 현재는 하나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 내가 관계하는 모든 지금(来看 · 여기까지)을 말한다.
영화 속 공원을 닮은 동네 공원을 지나다 사진을 찍었다. 시라야마와 달리 서너 장 찍었다. ⓒ허영한 영화 속 공원을 닮은 동네 공원을 지나다 사진을 찍었다. 시라야마와 달리 서너 장 찍었다. ⓒ허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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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종의 카메라를 30년쯤 전에 한동안 썼다. 이 카메라는 다른 자동카메라들에 비해 작고 가볍고 초점 기능이 좋아서 사진이 선명하다. 사진 찍는 사람이 할 일이란 렌즈 덮개를 밀어서 열고 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어디를 찍고 어디를 버릴 것인지, 언제 셔터를 누를지 결정하는 일 정도다. 별다른 기술도 기교도 필요하지 않고 내가 바라보는 현재를 그대로 무심히 그러나 깔끔하게 담아 줬다. 다른 자동카메라들과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카메라였다.
그 공원에는 영화에서 본 화장실과 비슷한 느낌의 화장실도 있었다. ⓒ허영한 그 공원에는 영화에서 본 화장실과 비슷한 느낌의 화장실도 있었다.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그는 필름 한 롤을 다 찍으면 현상소에서 사진을 인화한다. 사진들을 손에 쥐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중 간직할 것과 버릴 것을 고른다. 비슷한 여러 사진들 중 좋은 사진과 그렇지 못한 사진, 남길 사진과 버릴 사진의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그 기준은 개인의 내면에 있다.
햇볕을 위에서부터 받은 나뭇잎은 모세혈관 같은 잎맥이 도드라졌다. ⓒ허영한 햇볕을 위에서부터 받은 나뭇잎은 모세혈관 같은 잎맥이 도드라졌다.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멋지거나 아름답고 메시지가 분명한 사진이 좋은 사진일 수 있다. 무심하고 건조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을 건드리는 사진도 좋다. 인간의 흔적으로서 감각의 깊이를 말하자면 후자에 더 애정이 간다. 늘 같아 보이는 나무의 흔들림과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빛이지만 때마다 똑같지 않은 것은 화자의 마음이고 태도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듯한 순간은 화자와 청자의 무의식만을 건드리고 말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떤 격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무 아래에는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영화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던 듯하다. ⓒ허영한 나무 아래에는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영화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던 듯하다.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그가 사진을 고르는 기준 같은 것은 말하기 어렵다. 통속적으로 잘 찍힌 것이 아니라 그저 이유를 말하기 어려워도 마음이 움직이는, 왠지 끌리는 사진이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찍는 순간 손끝의 사소한 차이가 불러오는 결정적 차이. 그가 고르는 사진은 다른 모든 사진과 아주 비슷한 단 한 장이다. 매일 밤 비슷하지만 다른 그의 꿈처럼, 다른 모든 날과 아주 비슷한 단 하루처럼.
같은 길을 걸어 다니면서 동네 느티나무 한 그루 사진을 자주 찍었다. 늘 같은 듯 다른 나무였다. 누구에게나 마음에 품은 나무 한 그루 쯤 있지 않을까. ⓒ허영한 같은 길을 걸어 다니면서 동네 느티나무 한 그루 사진을 자주 찍었다. 늘 같은 듯 다른 나무였다. 누구에게나 마음에 품은 나무 한 그루 쯤 있지 않을까.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허영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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