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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명 모인다더니…텅빈 '유령 집회', 행정력 낭비 골머리[논란의 집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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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6년간 집회 97% 미개최
경찰, 경비 인원 배치 난항
중복집회 한해 철회 신고 한계
과장신고 처벌 규정 부재

편집자주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집회로 인한 불편이 행복권 추구라는 또 다른 기본권과 충돌하면서 국민적 공감대에도 균열이 생겼다. 허술한 법의 사각지대를 노린 집회도 있다. 아시아경제는 4회에 걸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둘러싼 여러 논쟁과 대안을 진단해본다.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소재의 한 빌딩 앞. 이날 빌딩 앞 공터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한 시민단체의 대규모 집회가 예고됐다. 사전에 신고된 참석 인원은 2000명이다. 그러나 집회 시작 시간이 지났는데도 현장에는 단 1명의 참가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시위 구호 패널이 부착된 컨테이너 구조물만이 이곳이 집회 현장이라는 것을 짐작게 했다. 오후 4시께 다시 현장을 찾았으나 공터에는 낙엽만 뒹굴고 있었다.
시민들은 공터에 뿌리를 박고 선 집회 구조물에 불편을 호소했다. 인근의 회사에서 6개월째 인턴으로 근무 중인 저시력자 한모씨(29)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보행 속도를 대폭 낮춘다. 구조물이 만든 그늘로 시야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서다. 한씨는 "구조물이 설치된 지 2년 정도 됐다고 들었다"며 "시각장애인은 명암과 빛에 예민한데 구조물 아래가 어두워서 몹시 당황스럽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집회 신고를 해놓고 실제로는 개최하지 않는 이른바 '유령 집회'와 '알박기 집회'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진영의 집회를 방해하거나 장소 선점이 목적인 탓에 경찰의 행정력 낭비도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소재의 한 빌딩 앞에 시민단체가 설치한 시위 구조물이 놓여있다. 이지은 기자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소재의 한 빌딩 앞에 시민단체가 설치한 시위 구조물이 놓여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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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만 하고 미개최…유령 집회 횡행
27일 아시아경제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집계된 집회 신고 횟수는 총 1653만6005회다. 이 중 전체의 97.5%(1612만1550회)가 개최되지 않았다. 올해의 경우 지난 1월부터 지난달까지 총 210만4230회의 집회가 열리기로 예정됐으나 96.6%(203만2157회)가 미개최됐다.
2000명 모인다더니…텅빈 '유령 집회', 행정력 낭비 골머리[논란의 집시법] 원본보기 아이콘

유령 집회는 타 집단의 집회를 막거나 장소를 선점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신고만 하고 실제 집회는 개최하지 않다가 후순위 신고자가 나타나면 천막 등을 세워 형식뿐인 집회를 이어나가는 방식이다.
이런 행위를 막고자 2016년 집회 철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을 시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실효성 측면에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과태료는 선순위 단체가 집회 신고를 한 뒤 후순위 단체가 같은 장소와 시간대에 집회 신고를 요청한 경우에만 부과할 수 있다. 중복 집회가 아닌 상황에서는 집회 철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과태료 대상에서 제외된다.
신고만 하고 열지는 않는 유령 집회로 인해 경찰들은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주최 측의 집회 신고가 들어오면 참가 인원을 추산하고 동향을 경비과에 알리는 과정에서 행정력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주최 측에서 당일 아침에 집회를 갑자기 열지 않겠다고 전달하는 등 변동사항이 자주 생긴다"며 "집회 직전까지 여러 차례 인원을 체크한 뒤 경비 인력을 산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1000명 모인다더니 20여명 남짓…'뻥튀기 집회' 남발
집회 주최 세력을 부풀리고자 참가인원을 수백 배 부풀려 신고하는 '뻥튀기 집회' 역시 경찰력 낭비를 야기한다.
실제로 아시아경제가 지난 4일부터 11일까지 500명 이상 참가하겠다고 신고한 집회 현장 6곳을 확인한 결과 모든 집회가 주최 측 신고에 턱없이 못 미치는 인원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11일 한 정치단체의 정치인 처벌 촉구 집회의 경우 사전 신고 인원 1000명에 턱없이 못 미치는 20여명이 집회에 참여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에 열린 한 노동조합의 임금 체불 규탄 시위는 690명이 모이기로 사전 신고됐지만 실제로는 3명의 참가자가 피켓 시위를 하는 데 그쳤다.
2000명 모인다더니…텅빈 '유령 집회', 행정력 낭비 골머리[논란의 집시법] 원본보기 아이콘
문제는 현행 집시법상 집회 인원 과장 신고를 제재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헌법 21조에 규정된 기본권이기에 모든 집회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된다. 따라서 집회 인원을 부풀렸다는 이유로 집회 신고를 거절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이에 경찰 측은 경비 인력이 과다 배치됐을 시 즉시 다른 현장에 보내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 인원 신고는 (헌법상 보장받아야 할) 자유이므로 신고인원보다 작게 오더라도 그에 맞춰 경비 인원을 즉시 줄여서 대비하고 있다"며 "실제 집회에 참여한 인원 대비 기동대 경력이 많이 배치되면 일부 부대를 경비가 필요한 다른 집회에 재배치한다"며 고 설명했다.
전문가, "허위 집회 시 우선순위 뺏어야"…제재 수위 강화 강조
전문가들은 유령 집회와 알박기 집회를 근절하려면 허위집회에 대한 법적 제재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중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알박기 집회로 타인의 집회 기회가 침해되거나 행정력 낭비가 초래될 때는 기본권의 남용이나 민법상의 권리남용 법리 문제로 접근해 과태료 부과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또 상습적으로 알박기 집회를 한 주최자에 대해서는 집시법상 집회방해죄를 적용하는 방안도 있다"고 지적했다.
뻥튀기 집회를 반복하는 주최자에는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무조건 이들을 처벌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면서도 "특정 단체가 반복적으로 허위 인원을 신고할 경우 집회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하는 등의 유연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경직돼있는 집회 사전 신고 규정이 뻥튀기 집회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행 집시법상 집회 신고는 집회 예정일로부터 720시간(30일) 전부터 48시간(2일) 전까지 이뤄져야 한다. 이희훈 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집회 당일에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30일 전에 집회를 신고한 뒤 변동이 생겨 주최자가 마치 거짓말을 한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요 선진국은 집회 신고 기간을 한국보다 짧게 운용하고 있다"며 "한국도 집회 신고 시간이나 철회 시간을 좀 더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지은 기자 [email protected]
심성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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