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의 글은 숨을 쉰다. 편한 호흡은 아니다.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동반한다. 헤어 나오기 어려운 늪에 빠지게 할 때도 있다. 타인의 고통을 외롭게 방치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밑그림이다.
한강은 그렇게 인간의 힘겨운 내면을 세상과 공유한다. 그의 글에 빠져들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선으로 연결된다. 아픔도, 기쁨도, 고통도 타인만의 그것이 아닌 나의 일부로 느껴지게 하는 경험. 한강의 소설을 관통하는 색채는 잿빛에 가깝다. 인간 삶에 얼마나 많은 폭력이 녹아 있는지가 그 잿빛 이야기에 담겼다. 누군가는 매일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데, 세상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방치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도 그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한강이 천착하는 역사는 장강(長江)의 거대한 물결보다는 평범한 이의 삶이 녹아 있는 지류(河段)에 가깝다. 차분한 시선으로 인간을 투영하며 길을 찾아가는 과정. 인간 내면에 감춰진 감정의 일렁임 하나에 소설의 전개가 달라질 정도로 섬세한 다가섬이다.
한강은 현실을 대하는 삶의 자세도 남다르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만큼이나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였다. 찬사로 귀결될 수많은 언론 인터뷰, 화려한 축배 무대를 마련해야 할 시점에 그는 세상과 떨어짐이라는 의외의 선택을 했다. 한강은 스웨덴 공영방송에 그 배경을 전했다. "나는 조용히 있고 싶다.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
작은 관 속에 자기 몸을 밀어 넣은 채 언제 끝날지 모를 절망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처지. 이는 소설 속 음울한 주인공의 사연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누군가 자기 얘기라고 받아들인다면, 소설은 이미 현실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의미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선, 우리는 지금 그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한강의 소설은 바로 그 미지의 좌표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때로는 사회의 고발자로, 역사의 증언자로 나설 수밖에 없는 작가의 운명. 야만의 시대를 기록하는 것은 고통이다. 한강은 인간 내면의 그림자를 체화하는 고통을 기꺼이 감내했다. 그리고 문단(文壇)에, 글을 쓰는 모든 이에게 성찰이라는 물음을 던졌다.
원고지 위에 남겨진 흑연의 자취가 몸서리치는 부끄러움으로 기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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