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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깡통 할아버지’의 죽음…집이라는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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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억대 자가 아파트 빼면 빈털터리
현금성 자산 없어 빈곤에 고독사
집에 얽매인 한국 사회 아픈 단면

조영철 오피니언팀장 조영철 오피니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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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두고 가야 한다. 뗏목이 고맙다고 등에 지고 산에 올라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면 안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강을 건너고도 뗏목을 놓지 않으려 집착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도 저마다의 ‘뗏목’을 지고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는지 모른다. 그 굴레와 같은 것을.
지난 6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8억 자가 아파트 빼면 빈털터리…70대 독거남의 비극(조선닷컴)’ 기사는 집이라는 ‘뗏목’이 멍에가 된 한국 사회의 아픈 단면이다. 이 기사는 사회복지사 신아현 작가가 실제 경험담을 적은 에세이집 ‘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데이원)’에 등장하는 70대 ‘깡통 할아버지’의 고독사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깡통 할아버지’는 음식을 깡통에 불을 붙여 데워 먹는 것을 본 이웃들이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는 재개발 열풍이 불면서 8억원에 달하는 아파트를 소유했지만 현금성 자산이 없어 전기나 가스도 쓰지 못할 만큼 궁핍한 삶을 이어오다 외로이 생을 마감했다. 집을 소유했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원받을 수도 없었다. 사회복지사가 “아파트를 팔아서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제안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아무리 궁색해도 내 전부인 집은 팔 수 없다”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30년간 혼자 살아온 그에게 집은 거주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 삶의 전부이자 자존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깡통 할아버지’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떤 사람’만의 이야기일까. 대한민국 가계의 평균 자산 80%가 부동산에 묶여 있으며 이른바 ‘영끌’로 아파트를 마련한 젊은 세대들까지 대출금을 갚느라 허덕이고 있다.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지난해 말 퇴직연금에 가입한 직장인(30~59세)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후에 사용할 수 있는 금융자산은 평균 1억7000만원이다. 노후 적정 월평균 가구 생활비를 300만원이라고 응답한 것을 고려하면 4년 치 생활비 수준에 그친다. 이대로라면 수억 원대에 달하는 아파트에 살면서 은퇴 후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불행한 말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얘기다.이처럼 ‘깡통 할아버지’ 이야기는 대한민국 노년층은 물론 중산층 이상 가구들이 직면한 본질을 정확히 보여준다.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없애면 우리 사회가 불필요한 재정 낭비를 줄이고 조금 더 여유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깡통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도 던진다. 행복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인간의 삶은 세계에 던져지기에 앞서 집이라는 요람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집은 세계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포근한 요람이라는 의미다.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집이라는 본연의 거주 목적을 잃고 부의 불평등을 가르는 자산이 되고 있다. 서울과 지방의 집값 양극화는 물론 서울에서도 강남과 강북의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사회 불안의 요인이 되고 있다. 집이 없는 사람의 불안과 소유한 사람의 불안을 동등하게 취급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불안은 뿌리가 같다. 집이 투자 대상이 되면서 수십억 원짜리 집을 가진 사람도 집값 변동에 따라 불안을 느낀다.
집이 ‘돈 놓고 돈 먹기’의 환금성 상품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성찰적으로 던지는 말. 집은 사는 곳인가, 사는 것인가. 어쩌면 역설적으로 ‘깡통 할아버지’는 집이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이란 의미를 가장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조영철 오피니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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