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모리스 창, 최고의 기술 인력 확보에 매진
'핀펫의 아버지', '6인의 기사' 등 최고의 인재 확보
中 SMIC는 TSMC 인력 모아 자립 기반 마련
전문가 "SMIC, 2나노 반도체 만들 것"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는 미국의 규제를 정면 돌파해 7나노 공정을 성공시켰다. 이에 대해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의 예상은 충격적이었다. 7나노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는데 2나노라니. 이게 가능할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그는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집착과 막대한 자금 지원, 해외에 산재한 중국계 반도체 인재 스카웃이 중국 반도체 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극자외선(EUV) 노광기가 없이 생산하는 7나노 이하 최신 공정 칩의 경제성과 성능은 논외다. 중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모리스 창은 대만에 '반도체 방패'를 안겼지만, 중국에는 방패를 찌를 창을 넘겨주었다. 반도체 인력 이동이 낳은 나비 효과다.
TSMC와 SMIC의 기술 개발은 적극적인 인재 영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TSMC에서 SMIC로 이어지는 인력의 계보는 사실상 모리스 창의 과감한 투자에서 비롯됐다. SMIC는 TSMC 인력을 노골적으로 스카웃했다.
반도체 파운드리의 삼두마차 중 하나인 미국 인텔이 EUV를 활용한 첫 7나노 공정 모바일 CPU인 '메테오 레이크'(Meteor Lake)를 지난1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메테오 레이크는 인텔의 모바일 CPU다. AMD에 밀리던 인텔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메테로 레이크는 오는 12월부터 판매된다. SMIC 7나노 공정에서 생산된 기린9000S를 사용한 화웨이 메이트60프로는 이미 판매 중이다.
비록 많은 희생이 있다고 하지만 SMIC가 인텔에 앞서 7나노 공정 칩을 생산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모리스 창의 인재 욕심‥핀펫의 아버지도 TSMC 행
앞서 애플 쇼크웨이브가 전했듯 모리스 창은 반도체 설계 전문가라고 보기 어렵다. 창은 트랜지스터 시기 반도체 제조 공정 전문가다. 10% 정도던 IBM 납품용 트랜지스터의 수율을 20%까지 끌어올렸던 이다. 당연히 창은 마이크로프로세서 시대의 반도체 설계와 관련한 특허와는 큰 연관이 없다.
대신 창은 '파운드리'라는 새로운 산업의 미래를 예견했고 인력 확보에 혜안을 발휘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영자가 최고의 기술자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TSMC의 모리스 창이 최고의 기술자는 아니지만, 경영 능력을 겸비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창은 인력 확보가 TSMC의 미래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주도로 TSMC '6인의 기사'로 불리는 인사들이 속속 TSMC에 합류했다. 장상이, 량멍쑹, 쑨원청, 린번젠, 유진화, 양광레이다. 이 중에서 량멍쑹, 장상이, 양광레이가 SMIC에서도 일했거나 지금도 근무 중이다.
창의 인재 영입의 절정은 이들이 아니다. 첸밍 후(Chenming Hu) 미 캘리포니아대학(UC) 버클리 캠퍼스 교수다. 그에게는 지금도 TSMC 석좌교수라는 직함이 있다.
후 교수는 미 반도체 업계에서 '핀펫(FinFET)의 아버지'로 불린다. 핀펫을 통해 100나노 이하 반도체 등장을 견인한 게 후 교수다. 후 교수가 핀펫 기술을 혼자 개발한 것도 아니다. 그는 일본 기술진들이 시도한 핀펫 기술을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핀펫이라는 용어도 후 교수에 의해 만들어졌다.
후 교수는 2016년에는 핀펫 개발의 성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서 국립 기술혁신 메달(National Medal of Technology and Innovation)도 받았다. 국립 기술혁신 메달은 과학자, 엔지니어, 발명가가 미국 정부로부터 수여 받는 최고의 명예다.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는 2020년에 후 교수에게 명예훈장(medal of honor)를 수여했다. IEEE 명예 훈장은 전기 전자 분야 최고의 인재들이 받아왔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윌리엄 쇼클리, 잭 킬비, 고든 무어, 앤디 그로브, 로버트 노이스, 모리스 창이 받았다. 후 교수는 쟁쟁한 반도체 분야의 선구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후 교수는 미국 국방 고등연구계획(DARPA) 자금을 지원받아 1999년 핀펫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후 교수는 핀펫 관련 특허를 내지 않았다. 후 교수는 특허를 내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당시 TSMC에는 이미 장상이라는 거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와 HP 출신인 장상이는 1997년 가족들을 미국에 두고 홀로 대만에 돌아와 TSMC에 입사했다. '파파 장'으로 불리던 그는 연구개발 부사장으로 일하며 TSMC의 기술 개발에 앞장섰다. 장은 TSMC 마이크로패터닝 기술을 맡을 쑨원청과 IBM 출신의 노광기술 전문가 린번젠도 영입했다.
장상이와 후 교수는 국립대만대학교 전기공학과 동창이기도 하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떠나 대만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경쟁하기보다는 협력하며 TSMC의 쌍두마차로 부상했다.
후 교수의 초빙은 모리스 창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창은 최고의 인력을 영입하기 위해 각별히 공을 들였다.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후 교수가 핀펫을 발표한 1999년에는 UC버클리 TSMC 석좌교수 타이틀도 안겼다.
후 교수는 CTO로 근무하면서 TSMC에 핀펫 기술을 전수했다고 한다. 후 교수가 TSMC에서 일하는 동안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당시 원광대 교수)은 후 교수팀이 고안한 핀펫 기술의 문제점을 보완한 벌크 핀펫 특허를 신청했다.
후 교수가 2009년 학부 강의 자료를 모아 발간한 책 '현대 반도체 소자 공학'은 국내 대학에서도 교재로 쓰인다. 이 책 번역자 중 한 명이 이 장관이다. 이 장관은 책의 역자 머리말에서 "후 교수의 전문가다운 설명에서 큰 즐거움을 발견하기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업계에 따르면 후 교수는 TSMC 근무 시 핀펫 기술의 전수에 전력을 다했다고 한다. TSMC는 핀펫의 아버지에게서 직접 기술을 확보한 것이다. 창이 핀펫 기술의 등장 직후 수년간 자문 역할을 해왔던 후 교수를 아예 영입했다는 것은 핀펫 기술의 중요성을 파악했음을 보여주는 예다. 비록 TSMC는 2011년 인텔에 핀펫을 이용한 공정의 선수를 빼앗겼지만 결국 핀펫 경쟁에서 승리한 것은 TSMC였다.
지금도 젠센 황, 리사 수 등 중국계 인사들이 반도체 업계를 주름잡고 있지만, 초기 미국 반도체 업계에 중국 인사들이 있었고 이들이 후학에게 영향을 미쳤다. 후 교수도 1960년대 대만에서 대학을 다니던 중 방문 교수로 온 프랭크 팡(IBM 왓슨 연구소 연구원)이 "미래에는 반도체에 의해 벽에 걸 수 있는 TV가 등장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가슴에 새기고 유학길에 올라 반도체를 연구했다. 그 역시 고향 대만을 위해 기술은 전수했다.
후 교수는 자신의 영웅으로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를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창이 반도체 기술 발전에 대한 확실한 후원자였음을 인정한 것 아닐까.
'핀펫 아버지'의 제자 량멍쑹
TSMC 6인의 기사 중 한 명인 양광레이는 최근 대만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행사에서 량멍쑹에 대해 “삼성에서 일하든 SMIC에서 일하든 온 마음과 영혼을 바쳐 일에 전념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집념이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SMIC가 자체적으로 7나노 공정에 성공했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양광레이도 TSMC, SMIC를 거쳐 최근 인텔의 자문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번에는 인텔의 청부사로 TSMC에 칼날을 겨눌지도 지켜볼 일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lboqhen.shop)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