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결과가 나오면 누구의 역할이 컸는지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서울의 도시계획사를 쭉 보다 보면 떠오르는 의외로 그런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서울을 만든 것은 계획, 체계, 분석 같은 이성적인 단어라기보다는 ‘임기응변’ ‘공포감’과 같은 주관적인 감정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서울은 1990년대 초반까지 외줄타기식으로 도시발전을 해왔다. 예산이 없으니 계획을 집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반대로 계획을 통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도시를 만들어가는 것이 오랫동안 서울시의 숙명이었다. 주인 없는 하천을 매립해 땅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벌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동네가 2022년 모두가 선호하는 반포, 압구정, 동부이촌동, 여의도 등 한강변의 지역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한강변의 토지를 개발하는 데 있어 가장 무서운 것은 홍수였는데 소양강댐을 비롯한 여러 댐이 들어서면서 안심하고 개발할 수 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성장과 발전에도 ‘운’은 핵심적인 요소였다.
이제는 서울의 핵심이 된 한강 이남의 강남지역 역시 운이 따랐기에 현재의 모습이 될 수 있었다. 나룻배가 뒤집혀 대규모 인명피해가 난 나루터에 한남대교가 들어서면서 강남 개발은 시작됐다.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미래는 확실해 보였다. 사람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게 된 한강 남쪽은 필연적으로 난개발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기반시설은 확보해 놔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서울 도심에서 도로 하나를 새로 만들거나 확장할 때마다 기존 주택과 상가를 철거해야 하는 전쟁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했던 기억으로 먼 훗날까지 도로 확장이 필요 없는 도로를 놓고 싶다는 생각에 왕복 10차로가 넘는 광로가 만들어졌다. 학교 지을 땅이 없어서 고생했던 기억은 각종 학교용지 지정으로 이어졌다. 최소한 난개발은 막고 싶다는 생각이 강남의 모습을 결정한 것이다.
전시를 대비해 강북의 정부기관은 강남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논리는 타당하게 받아들여졌으며, 당연히 근무할 사람들도 강남으로 옮아가는 것이 타당했다. 하지만 공무원을 강제로 옮기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더 많은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 유흥시설의 강북 지역 신설 금지와 강남지역 무제한 허용이었다. 안정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더 끌어모으기 위해 명문 고등학교 이전이 등장하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밀어주기의 끝판왕으로 여겨지지만 당시로서는 강남 땅이 팔려야 도시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도 빈 땅이 많던 강남을 구원해준 것은 자동차였다. 쓸데없이 넓은 것으로 여겨지던 도로와 아파트의 주차공간은 마이카 시대를 맞이하면서 강남을 다른 지역과 차별화시키는 결정적 장점이 됐다. 그리고 투기 목적으로 사 놓은 땅을 놀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강제로 고층 건물을 짓게 해 빈 건물만 빼곡하게 들어서던 테헤란로는 외환위기 시절 벤처 창업의 근거지가 되면서 다시 한번 성장을 이끌게 됐다.
도시의 성장은 의도한 대로 되지 않는다.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많은 변화 요인이 작용하면서 당초의 의도를 왜곡하고 좌절시키곤 한다.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뒤집어 보면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고 우연적인 요소가 뒤따랐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세계적인 도시가 된 서울의 이면에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모두가 고군분투하던 시절이 존재했던 것이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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