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임대료·의약품 가격 통제.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내놓은 경제 공약들이다. 해리스가 '기회의 경제(opportunity economy)'라고 명명한 그의 경제 공약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시장 개입과 규제 강화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해리스는 식료품에 대한 바가지 가격을 금지하는 연방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식료품 시장 경쟁 활성화를 위해 대형 식품회사 간 인수합병(M&A)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도 도입한다.
가격 통제는 식료품뿐 아니라 의약품과 주택 임대료 시장에도 적용한다. 해리스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고령자를 대상으로 도입한 인슐린 가격 상한과 처방약 자기 부담 한도를 모든 미국인을 대상으로 확대키로 했다. 미국인 수백만 명의 의료 채무를 탕감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퍼주기 공약'이 따로 없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치솟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달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경제학 원론은 완전히 벗어난 포퓰리즘성 공약들이다.
그렇다고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제 공약을 안심하고 지켜볼 수만도 없다. 트럼프는 법인세 인하, 석유·가스 규제 완화 등 감세와 규제 철폐 등 시장 친화적 정책을 예고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 경제가 인플레이션의 늪과 불황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벌써 커지고 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관세다. 트럼프는 전 세계 수입품에 대한 보편관세 10~20%포인트, 대중국 관세 60%포인트 일괄 적용을 예고한 상태다. 관세 인상은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물가를 자극할 공산이 크다. 이민 억제 정책 역시 노동력 공급을 줄여 인건비 상승, 인플레이션 반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고,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할 경우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올해 3%에서 내년 3.6%까지 오를 것으로 봤다. 이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다시 올리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상승이 추가 긴축을 낳고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거론되는 이유다. 친시장 정책으로 꼽히는 법인세, 소득세 감세 공약 역시 적자 국채 발행을 늘려 금리를 뛰게 할 수 있다. 팁 면세, 자녀 세액공제 확대 등 해리스와 주거니 받거니 예고한 재정 군비 경쟁은 이 같은 우려를 더 한다. 금리 상승으로 인한 추가 긴축이 소비, 투자 위축과 불황으로 이어지고, 전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출마 포기로 해리스와 트럼프의 대결 구도로 확정된 미 대선 경쟁은 박빙 승부가 예상되며 갈수록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해리스가 지지율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대선 승패를 좌우할 경합주에선 접전이 예상돼 승자와 패자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분명한 건 두 후보의 공약을 살펴볼 때 경제만큼은 승자가 되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미 언론은 경제학자들이 각 후보 대선 캠프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 경제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상황을 놓고 "11월 대선의 승자를 예측하기엔 너무 이르지만, 패자를 예측하는 건 이르지 않다"며 "바로 경제가 패자"라고 짚었다. 해리스와 트럼프 모두 경제 공약을 부각하고 있지만, 정작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악성 포퓰리즘성 공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두 후보에게 가장 필요한 건 1992년 빌 클린턴의 선거 슬로건,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가 아닐까 싶다.
꼭 봐야할 주요뉴스
"전쟁 난 줄 알았다"…반값 사재기에 대형마트 '초...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lboqhen.shop)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