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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타그램]사하라에서 본 작은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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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지나간 시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씁니다. 이 글은 지난번에 쓴 ‘사하라 사람들이 사진을 좋아한 이유’의 이전 이야기(‘프리퀄’)입니다.

꼬마는 미동도 없이 고요한 눈길만을 내게 주며 대추야자 나무 그늘에 한 그루 묘목처럼 서 있었다. 사막의 불볕에 온몸의 에너지를 다 빨려버린 나는 나무 밑동에 기대 늘어져 있었다. 극단적 정적은 내가 있는 자리와 시간을 가늠할 수 없게 했다. 잠시 후 정적을 깨뜨린 것은 소리가 아니었다. 하얀 홀씨 하나가 바람 한 점 없는 허공에서 비스듬히 날아와 아이의 빛나는 두 눈 위 머리에 내려앉았다. 눈은 크고 맑았다. 홀씨 하나 내려앉았을 뿐인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다. 어떤 순간은 사소한 것 하나가 얹혀 전혀 다른 순간이 된다. 아이는 우주를 이고 있었다.
사하라 사막 유목민 워다베족 아이의 머기 위에 홀씨 하나가 내려 앉았고, 아이는 우주를 이고 있었다. ⓒ허영한 사하라 사막 유목민 워다베족 아이의 머기 위에 홀씨 하나가 내려 앉았고, 아이는 우주를 이고 있었다. ⓒ허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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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찍어야겠다고 어렵게 마음먹었다. ‘철커덕’, 아득한 어둠 같은 정적을 딱 한 번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갈랐다. 이명만이 깔려 있던 귓전에 그 소리는 ‘우당탕’에 가까웠다. 그 소란의 진동 때문인지, 홀씨는 다시 머리 위를 떠나 바람 없는 허공을 날아가다 비스듬히 땅에 내려앉았다. 그렇게 딱 한 장, 천운 같은 순간이 사진으로 왔다. 사진 속 아이는 이제 영원히 머리에 우주를 이고 있게 됐다. 사진은 가끔 아무것도 아닌 순간에 점을 찍고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게 한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설한 니제르 1번 국도. 가을에 내린 비로 강물이 범람했다.  ⓒ허영한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설한 니제르 1번 국도. 가을에 내린 비로 강물이 범람했다.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서아프리카 니제르(Niger)의 사하라 지역에는 15년 동안 우기에도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국토의 3분의 2가 사막이고 사막은 점점 더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다. 풀과 나무가 사라졌고, 생계 수단인 동시에 가족인 가축들은 굶어 죽었다. 가축이 없으니 곡식을 사지 못했고 사람도 굶었다. 동물과 사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절체절명의 여름을 지나고 있었다. 그 여름 나는 구호사업을 위해 그곳에 가는 교회 봉사단을 따라 그곳에 갔다. 그들의 어려움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 어떤 일인지 실감하지 못한 채 출장길에 올랐다.
워다베족 가을 정착지에서 장정이 깊은 우물에서 도르레에 매단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허영한 워다베족 가을 정착지에서 장정이 깊은 우물에서 도르레에 매단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나는 사진하는 사람으로서 그다지 아프리카를 꿈꾸지 않았지만, 타인의 불행이 나에게 일이 되는 경우는 많았고 그들의 불행이 내게 기회를 가져다준 아이러니를 거절하지 않았다. 기자인 나는 주어진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길을 나섰다.
사하라 사막 유목민 워다베족 추장의 아버지. ⓒ허영한 사하라 사막 유목민 워다베족 추장의 아버지.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사하라사막에서도 유목민이 사는 지역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설해 놓은 편도 1차선 1번 국도와 비포장도로를 번갈아 타며 열댓 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곳이었다. 수도 니아메(Niamei)에서 출발한 지 사흘 만에 그곳에 도착했다. 중간에 도시와 마을에 들러 주민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도시 사람들과 비교해 사막의 유목민들은 불행 앞에 조용했다. 기골이 장대하고 용모가 수려한 그들은 궁핍한 외양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다. 궁핍하다는 것은 도시인과 문명사회에서 소비되는 형용사로서의 이미지가 있다. 고단한 이미지로 절절한 사진적 장면을 상상했던 ‘기대’는 무너졌다. ‘뼈만 남은 듯한 아이들, 아이들의 얼굴에 달라붙어 쫓아도 달아나지 않는 초파리들. 죽어 널브러진 짐승의 사체들...’ 문명세계에 호소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사진은 가급적 참담해야 한다는 게 선입견이었을 것이다. 국제기구들이 쏟아놓은 이미지들이 사람들의 눈을 너무 높여 놓았다. 그렇다고 사진이 예견된 장면과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들은 고통스럽고 어려웠지만, 우리가 쉽게 예상하는 외양으로 불행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다. 며칠 만에 우리는 일을 끝내고 돌아왔다.
워다베족 여인이 저녁 무렵 가족들이 먹을 소젖을 짜고 있다. ⓒ허영한 워다베족 여인이 저녁 무렵 가족들이 먹을 소젖을 짜고 있다.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같은 해 가을, 그 아이의 사진 한 장 때문에 사하라사막을 다시 갔다. 그 여름 이후 그곳의 소식을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지난여름 내가 본 것들이 사진으로만 남아서 현실에 대해 전혀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사가 궁금했다. 의지만으론 그 먼 곳까지 운신하기 어려웠지만 여러 가지 연유와 핑계의 협업으로(누군가의 지시가 아닌) 나는 다시 그곳에 갈 수 있었다. 단 한 번 다녀왔을 뿐인 흙먼지 가득한 저녁 니아메의 비포장도로는 아늑한 느낌마저 줬다. 여름에 도착했을 때는 밤길이 무서워 차창도 열지 못했었다. 여름에 만났던 유목민들은 가을에는 다른 곳에 있었다. 여름은 떠나는 계절이었고 가을은 정착의 계절이었다. 문명의 시작은 정착에 있다고 배웠다. 유목민들이 건기에 정착하는 생활을 하게 된 데는 외부의 지원으로 우물과 곡물 저장고와 학교가 생긴 덕분이었다고 했다. 그해 가을 그들은 제대로 수확하지 못했고, 가장 큰 수확은 고달픈 여름을 견디고 살아남아 보통에 가까운 가을에 도착한 것이었다. 우리가 다녀온 뒤 기적 같은 비가 내려 농사짓는 사람들은 씨앗을 다시 뿌렸고 유목민들은 비를 먹고 자란 풀로 가축을 먹였다. 그들은 어렵게 ‘가을’에 닿았다.
유목민 투아레그족 마을의 가을 아침 ⓒ허영한 유목민 투아레그족 마을의 가을 아침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투아레그족 마을 소녀가 아침 일찍 염소 젖을 짜고 있다. ⓒ허영한 투아레그족 마을 소녀가 아침 일찍 염소 젖을 짜고 있다.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고단한 여름이 그랬듯 그들의 가을도 조용했다. 그들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먼 곳까지 다시 와준 손님을 고마워해 주었다.
낙타 풀 먹이러 나갔던 아이들이 해질 무렵 낙타를 데리고 집으로 가고 있다. ⓒ허영한 낙타 풀 먹이러 나갔던 아이들이 해질 무렵 낙타를 데리고 집으로 가고 있다.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아이들은 아침 식전부터 찾아와 내 주변을 얼쩡거리며 구경했다. 가축 풀 먹이러 가는 길을 따라갔고 장정들이 수십 미터 깊이의 우물에서 함께 물 길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을 사람과 가축이 함께 마셨다.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학교로 갔다. 11월의 개학 날이었다. 행복과 불행의 상대적 잣대가 의미 없는 곳에서 살아 있고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음이 행복이었다. 선천적으로 음악성을 타고난 부족의 아이들은 밤이 깊도록 캄캄한 풀밭에서 바가지를 두들기며 춤추고 노래했다.
워다베족 아이들이 늦가을 개학 첫날 교실에 모여 있다. 학교는 선교사들이 지어준 것이다. ⓒ허영한 워다베족 아이들이 늦가을 개학 첫날 교실에 모여 있다. 학교는 선교사들이 지어준 것이다.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워다베족 아이들이 어둠 속에서 노래 부르며 놀고 있다. ⓒ허영한 워다베족 아이들이 어둠 속에서 노래 부르며 놀고 있다.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밤하늘을 지붕처럼 덮고 있는 빼곡한 별들은 한꺼번에 쏟아진다면 함박눈처럼 눈앞 가득 한참을 날리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 지붕 아래 사하라의 가을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밤새 잠들지 못했다.
물에 엎든 바가지는 훌륭한 타악기다. 아이들의 리듬감이 탁월했다. 재즈의 기원이 어디였던가를 짐작케 해주었다.  ⓒ허영한 물에 엎든 바가지는 훌륭한 타악기다. 아이들의 리듬감이 탁월했다. 재즈의 기원이 어디였던가를 짐작케 해주었다.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초승달이 뜬 사하라의 가을 밤 하늘 빼곡히 별이 뒤덮고 있다. ⓒ허영한 초승달이 뜬 사하라의 가을 밤 하늘 빼곡히 별이 뒤덮고 있다.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알제리 국경에서 멀지 않은 아가데즈 근처 투아레그족 마을에 아침이 왔다. ⓒ허영한 알제리 국경에서 멀지 않은 아가데즈 근처 투아레그족 마을에 아침이 왔다.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워다베족 추장 우바 하산(왼쪽)과 부족 장정들. 아침 '출근길'에 기꺼이 카메라 앞에 서 주었다. ⓒ허영한 워다베족 추장 우바 하산(왼쪽)과 부족 장정들. 아침 '출근길'에 기꺼이 카메라 앞에 서 주었다. ⓒ허영한 원본보기 아이콘




허영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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