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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타자기]“우리는 ‘우생사회’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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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우리 안의 우생학’
“우생학 흔적 인정해야 탈우생사회 가능”

지난 8일 일본 국회는 ‘강제불임’ 피해자에 대한 보상법안을 통과시켰다. 나치의 ‘단종법’을 따라 일본은 1948년 ‘우생보호법’을 만들어 장애인이 자녀를 낳지 못하게 수술을 강제했고, 약 50년간 1만6000여명에 달하는 피해자를 양산했다. 일본 국회는 “우생사상을 근거로 잘못된 정책을 추진한 점에 심각하게 책임을 인정하며, 진심으로 깊이 사죄한다”는 결의도 채택했다.
우생학은 영국 유전학자 프랜시스 골턴(1822~1911)의 ‘인위도태설’에서 기원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내세운 ‘자연도태설’과 달리, 골턴은 가축을 개량하듯 인위적인 선택을 통해 개량한 인종이 진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특정 기준에 따른 적격자만 남겨 공동체의 발전을 이루겠다는 전략이 구체화했다. 유전과 생식의 통제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체계와 편견에 따른 구분 및 정당화 등도 넓은 의미의 우생학으로 볼 수 있다.
[빵 굽는 타자기]“우리는 ‘우생사회’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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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우리 안의 우생학’의 저자들은 과학사, 의학사, 의료사회학, 장애사, 젠더 등 다양한 연구의 관점에서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 한국 우생학의 역사를 추적한다. 약 100년 전 일제지식인들은 민족 발전의 수단으로 우생학을 한국에 소개했다. 식민지 조선의 우생학은 ‘발전’과 ‘진보’가 핵심 키워드였다. 해방 이후엔 일부 과학자·의학자를 중심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우생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과 1990년대까지 이어진 우생학 교육이 그 흔적이다.
물론 개개인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우월한 자손을 낳고 싶은 열망 자체를 모두 부정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다. 실제 당대의 맥락에선 우생학적 사고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경우도 많았다. 가령 조선의 페미니스트들은 우량한 자녀 한둘만 낳는 것이 여성의 자기계발 및 사회진출 시간을 늘리고, 여성을 봉건적 질서에서 해방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자발적인 선택 속에서 건강한 자녀를 낳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과 국가의 강요와 폭력에 의해 임신, 출산을 통제받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우수하고 개량된 신체를 갖고 있거나, 사회 적응력이 뛰어난 국민만 남기는 것은 국가의 폭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국내에서도 한센병 환자와 장애인이 강제불임 시술을 당하거나 시설에 격리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6·25 전쟁 이후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정부의 ‘국민통합’ 목표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져 해외입양의 주요 대상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2019년 서울신문과 장애인인권포럼, 공공의창이 공동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선 성인 응답자(1001명) 중 3분의 2가 ‘부모 등 주변인의 권유에 의한 장애인 불임수술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최소한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은 37.1%에 그쳤다. 저술에 참여한 소현숙 박사는 “양육 현실의 어려움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지만, 장애인의 재생산권 침해를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가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책은 거듭 강조한다. “우생학을 그저 나쁜 것으로 묘사하며 악마화하는 것은 우생학이 실제로 차별을 양산하는 방식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탈우생사회로 가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우리가 사는 곳이 우생사회라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가 왜 우생사회를 살게 됐는지 진단하는 것이다.”
우리 안의 우생학 | 김재형 외 지음 | 돌베개 | 320쪽 | 1만9000원




김대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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