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학기의 시작을 앞두고 미국 내 대학 학장들은 가자지구 전쟁에 반대하는 캠퍼스 시위에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학기 캠퍼스에서의 농성텐트 시위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한 가지는 아직도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과연 어떤 시위를 학문의 자유·표현의 자유에 부합하는 합법적 시위로 간주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의 답은 또 다른 질문에 달려있다. 이론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캠퍼스 생활에 방해로 판단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가장 먼저, 관련 규칙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지난 학기 동안 캠퍼스 상황이 1960년대 후반 이후로 볼 수 없었던 수준의 한계점까지 치달았던 이유 중 하나다. 가자지구 시위는 앞서 학생들이 전개했던 기후변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낙태권을 비롯한 생식권(출산과 관련해 여성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시위와는 달랐다. 이들 이슈의 경우 교수진과 학생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은 캠퍼스 내에서 상당한 의견차 및 감정적 분열로 이어졌다.
그 결과 대학 행정관들은 ‘다른 학생들을 화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 만드는’ 학생들의 시위에 맞서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규칙들의 복잡함, 모호함, 이를 적용하는 재량권 등이 문제가 됐다. 하버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펜실베이니아 대학 총장들에게 엘리스 스테파닉 하원의원(공화당)이 던진 질문은 대학 내 괴롭힘에 대한 교칙이 시위자들에게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음을 떠올려보라. 해당 질문은 그중 2명을 사임하게 했다.
대학 캠퍼스들이 이번 가을 학기에 평화를 유지하고 관리자들도 자신의 직업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명확한 규칙을 갖고 이를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많은 질문을 남긴다. 어디까지가 규칙상 금지되는 방해행위인가. 예를 들어 시위자들이 공개 강연 도중 플래카드를 흔들거나 퇴장하는 정도의 짧은 방해 행위는 규칙상 방해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비록 잠시 방해가 있었다 하더라도 강의가 계속되고 있고, 참가자들이 배울 기회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더 어려운 문제는 대학 캠퍼스 중심부에 설치된 농성텐트장이 학교의 교육 기능을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다. 학생들이 여전히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한, 이 답은 ‘아니오’일 수 있다. 하지만 캠퍼스 중앙에 상당한 수의 농성캠프가 설치되고 사람들이 몰려 있다는 점은 분명 물리적 공간 측면에서 방해다. 사실, 이를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이제 시위의 메시지가 학생들로 하여금 소외감, 소수자 취급,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극우 성향의 프라우드 보이스(백인 우월주의·민족주의·성차별주의 등을 표방하며 정치 폭력 사건에 자주 등장하는 단체) 시위가 캠퍼스 중심에서 벌어졌다고 상상해보라. 그리고 그 시위가 기존 규칙에 대입해 볼 때 심각하거나 만연하지 않다는 이유로 학내 괴롭힘으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라. 공개적이고 의도적인 이 인종차별적 시위가 대학의 기능을 방해하는 것일까. 민권법 제6조에 따라 학생들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기회를 막는 것일까.
이 질문들에 답하기 전에, 먼저 사립대학과 공립대학 간의 미묘한 차이를 지적할 필요도 있다. 사립대의 경우 그 어떠한 시위, 방해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다. 시위를 금지한 대학이 학문적 자유의 가치를 완전히 존중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는 있으나, 이 또한 대학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반면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공립대학의 경우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구속된다. 이는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함을 의미한다. 대학이 원하든 원치 않든 공개된 장소에서 공격적 표현이 오가는 것 역시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허용돼야 한다.
대학 내 잔디밭을 점령한 농성텐트에 대한 방해의 정의는 해당 공간이 캠퍼스의 상징 그 이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한 그룹이 공유공간을 점유하고 며칠, 몇 주 그 이상 떠나기를 거부한다면 이는 방해행위일 뿐이다. 캠퍼스 중심부에서 물리적 방해가 장기화한다면 이는 대학의 사명인 교육을 방해하는 것이다. 대중은 공공장소를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지나갈 권리가 있다. 통상 시내 공공장소에서 시위 허가를 신청할 때 '시간, 장소, 방식'의 제약이 설정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대학 역시 유사한 규칙을 적용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시위가 모든 규칙을 준수하고 학내 괴롭힘으로 간주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생들이 여전히 시위자들의 메시지로 인해 차별,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시위가 학생들의 대학 활동 참여를 방해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는 언제일까. 그리고 이것이 민권법 제6조 위반에 해당되는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이는 현재 대학들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민권법 제6조와 관련된 법적 측면은 법원에서도 명확하게 답변되지 않았다. 학생들은 앞서 하버드를 포함한 대학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반유대주의 발언을 완화하지 못한 대학이 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 발언이 학내 괴롭힘으로 명확히 간주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대학이 내린 가장 좋은 답변 중 하나는 공격적 발언이 있더라도 모두 차별에 해당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학문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시위가 공격적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방해 행위로 간주해선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학생들이 강하게 거부하는 안에 대한 시위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 경계를 설정하는 최선의 방법은, 시위자들의 메시지가 그들이 반대하는 관점을 다루고 있는지 아니면 그 관점을 가진 특정 사람들을 다루는지 따지는 것이다. "이민은 잘못됐다"는 주장은 학문적 자유의 일환으로 허용될 수 있다. 반면 "이민자들은 집으로 돌아가라"라는 메시지는 캠퍼스를 포함한 특정 대상을 겨냥한 발언이다. 이러한 메시지를 앞세운 시위는 일부 학생들의 캠퍼스 생활을 방해하는 것으로 결론 내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표현의 자유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대학은 규칙을 극도로 명확하게 만들고, 그 규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가능한 한 투명하게 해야 한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세부 사항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대학이 방해의 정의를 명확하게 구체화하고, 공평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노아 펠드먼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University Rules on Campus Protests Are Clear as Mud'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해 요약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블룸버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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