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위 배터리 기업인 CATL은 지난달 2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국제배터리페어(CIBF)에서 2027년에 전고체 배터리를 소량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 회사 고위 임원인 위 카이(Wu Kai)는 "현재 1000명에 달하는 연구개발(R&D) 인력들이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CATL이 개발하는 전고체 배터리는 500와트시(Wh)/㎏의 에너지밀도를 구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CATL은 전고체 배터리 대량 양산을 위해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로 '가격'을 꼽았다.
한국과 일본이 주도하던 전고체 배터리 시장에 중국이 가세하면서 시장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삼성SDI는 900Wh/ℓ(450Wh/㎏)의 에너지밀도를 구현한 전고체 배터리를 2027년 양산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도요타도 2027~2028년을 전고체 배터리를 상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고체 배터리에 대해서는 배터리완전정복 16회 참조>
전고체 배터리가 가시화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과연 전고체 배터리는 어떤 폼팩터(form factor·제품의 외형)로 나올 것인가다.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앞두고 폼펙터 논란이 재연되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
삼성SDI 고주영 부사장은 지난 3월 SNE리서치가 주최한 2024 NGBS 세미나에서 전고체배터리의 폼펙터에 대해 "프로토타입은 파우치형을 활용하고 있지만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각형을 검토하고 있다"며 "(상용화 시) 처음부터 각형으로 갈지 아니면 파우치로 가다가 각형으로 바꿀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샘플 제작에 편리해 초기에 파우치형으로 선보였을 뿐 궁극적으로는 각형으로 전고체 배터리를 생산하겠다는 말이다. 특히 주목을 끄는 부분은 고객들이 각형을 선호하고 있다는 언급이다. 각형 배터리에 강점을 가진 중국 기업들도 전고체 배터리를 각형으로 출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면, 각형 생산 라인이 없고 원통형과 파우치형만 생산하는 LG에너지솔루션은 파우치형으로 전고체 배터리를 출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 김제영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지난 3월 인터배터리2024 기조연설에서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파우치형 배터리의 장점을 소개했다.
그는 "전고체 배터리는 계면 저항을 줄이기 위해 균일하게 가압을 해야 한다"며 "파우치가 새로운 케미스트리(chemistry·베터리의 화확 조성)를 수용하기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온 전도성을 높이기 위해 압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 점에서 파우치 배터리가 각형에 비해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김 CTO는 "원통형과 파우치형 2개의 폼팩터는 상호 보완적이어서 현재와 미래의 케미스트리 모두 서포트할 수 있다"며 각형 생산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이에 비해 현재 파우치형 배터리만을 생산하고 있는 SK온은 각형과 원통형 배터리를 추가로 개발하고 있다. 파우치형만으로는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각형·파우치형, 말지 않고 쌓는다
초기에는 각형이나 파우치형 배터리도 원통형 배터리의 젤리롤과 마찬가지로 양극과 음극, 분리막을 납작한 모양으로 와인딩(flat winding)한 후 케이스에 담는 방식을 사용했다. 와인딩 방식은 제조 공정이 단순하고 빠르게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역시 원통형과 마찬가지로 케이스 안에 어느정도 빈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배터리의 공간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양극, 분리막, 음극을 낱장으로 만들어 차곡차곡 쌓는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다. 양극-음극-분리막을 한 장씩 쌓는 스태킹 방식은 대량 양산에서는 부적합했다.
그런데 최근 생산성을 유지하면서도 전극과 분리막을 차례로 쌓는 스태킹 공법들이 개발되면서 각형과 파우치 셀을 제조할 때 스태킹 방식들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실제로 삼성SDI도 각형 배터리를 제조할 때 기존에는 플랫 와인딩 공법을 적용했으나 5세대(Gen5)부터는 스태킹 방식으로 바꾸었다.
스태킹 공법은 제조사마다 약간씩 다르다. SK온(파우치)과 삼성SDI(각형)는 분리막을 중심으로 양극과 음극을 지그재그로 쌓는 방식을 적용한다. SK온은 이를 Z폴딩(Z-folding), 삼성SDI는 Z스태킹(Z-stackin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LG에너지솔루션은 자체 특허 기술인 라미네이션&스태킹(Lamination & Stacking· L&S) 공법으로 파우치 셀을 제조해왔는데 최근엔 Z스태킹 방식도 도입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를 어드밴스드 Z스태킹(Advanced Z-Stacking·AZS)이라 부른다.
Z폴딩 공법은 SK온이 2019년부터 국내에서 처음으로 본격 적용하기 시작했다. 삼성SDI도 2021년 5세대 각형 배터리를 생산할 때부터 Z스태킹 방식을 도입했다.
Z폴딩 혹은 Z스태킹 공법은 양극과 음극을 각각 낱장으로 재단한 후 분리막을 지그재그로 쌓으면서 그사이에 양극과 음극을 각각 번갈아 가며 끼워 넣는 방식이다. 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전 단계인 노칭 공정에서 양극과 음극을 먼저 절단한 후 양극 탭과 음극 탭을 용접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Z폴딩(Z스태킹) 방식은 분리막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지그재그 방식으로 완전히 포개듯이 감싸게 돼 양극과 음극이 완전히 분리된다. 이에 따라 모서리 부분에서 양극과 음극이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줄어들어 화재 안전성이 높아진다. 케이스 공간 효율성도 기존 와인딩 방식에 비해 개선돼 에너지밀도를 올릴 수 있다. 다만 생산 속도는 와이딩 방식에 비해 느린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의 라미네이션&스태킹 방식은 전극과 분리막을 결합한 바이셀(bi cell)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바이셀이란 전극과 분리막 여러 개를 결합한 일종의 배터리 반제품이다. 양극-분리막-음극-분리막-양극, 또는 음극-분리막-양극-분리막-음극과 같이 양 끝 쪽이 같은 전극인 적층 구조를 갖고 있다.
이후 바이셀에 분리막과 음극으로 구성된 하프셀(half cell)을 붙여 정렬하는 라미네이션 작업을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분리막을 기준으로 음극과 양극을 차례로 쌓으면 배터리 소재가 완성된다.
캔이냐 주머니냐
각형과 파우치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을 만드는 전극 공정까지는 원통형 배터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조립 과정에서부터 상이하다. <원통형 배터리 제조 공정에 대해서는 34회 참조>
기본적으로 와인딩이나 스태킹한 배터리 소재를 각진 금속 캔에 넣으면 각형 배터리가 되고 얇은 필름 주머니에 넣으면 파우치형 배터리가 된다. 어디에 넣을지는 고객사들의 요구와 각 기업의 전략에 달렸다.
각형은 배터리 소재에 탭을 용접한 후 캡(뚜껑)과 연결한 후 알루미늄이나 철로 된 금속 캔에 넣는다. 이후 캡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전해액을 주입한 후 밀봉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각형 배터리의 화성 공정은 원통형 배터리와 유사하다.
삼성SDI와 SK온은 외장케이스에서 양극과 음극의 위치를 위가 아닌 양 옆에 두는 양방향 각형 베터리(Side-Terminal Battery)도 선보이고 있다. 양방향 각형 배터리는 양면(상·하)에서 냉각이 가능하고 팩안에 셀을 2단으로 적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파우치형 배터리의 케이스는 알루미늄박과 나일론, 폴리프로필렌 등으로 구성된 얇은 필름이다. 파우치 케이스는 배터리 소재를 넣을 전극 포켓과 전해질을 주입하고 가스를 보관할 수 있는 공기 포켓 부분으로 구분돼 있다. 이 전극 포켓에 배터리 소재를 넣은 후 전해질을 주입하고 밀봉한다. 이후 화성공정에서 충·방전하면 가스가 공기 포켓에 모이게 된다. 이 공기 포켓을 잘라내는 과정을 디개싱(degassing)이라고 한다.
원통형, 각형, 파우치형 모두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에 어느 형태가 일방적으로 우수하다고 표현하기 어렵다. 원통형 배터리는 제조공정이 단순하고 열전이 방지에 유리하지만 공간 효율성이 떨어진다. 각형 배터리는 공간 효율성이 좋고 적층에 유리하지만 무겁고 다양한 형태로 제작하기 어렵다. 파우치형 배터리는 가볍고 다양한 형태로 제작할 수 있지만 충격과 열전이에 불리하다.
배터리 제조사들은 각각 유형에 따라 장점을 최대화하면서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보완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 한 종류의 배터리만을 고집하지 않고 2~3종류를 함께 출시하며 고객사들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각형 베터리의 경우 모듈화 과정을 생략한 셀투팩(Cell To Pack·CTP), 혹은 셀을 직접 차체에 부착하는 셀투새시(Cell To Chassis·CTC)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전기차용 배터리는 모듈과 팩 단계를 통해 여러 장치가 덧붙여지면서 부피와 무게가 늘어나고 에너지밀도가 감소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들을 단순화하면 더 많은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어 에너지밀도를 올리고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게 된다.
셀투팩(CTP) 기술은 에너지밀도가 낮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CATL 등 중국 기업들이 각형 배터리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BYD의 '블레이드(blade)' 배터리라도 셀투팩 기술로 설계돼 있다. 최근엔 국내 기업들도 셀투팩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파우치형 배터리에도 셀투팩 기술을 선보였다.
셀투새시는 모듈과 팩을 생략하고 셀을 차량 새시에 부착하는 방식이다. 셀투새시는 부품 수를 크게 줄이고 차량 무게를 대폭 낮춰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완성차 업체와 협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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