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 4대 소재 중 성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전극이다. 양극 및 음극은 활물질과 도전재, 바인더를 용매와 함께 섞어 슬러리를 만든 후 집전체(알루미늄박 혹은 구리박)에 도포하는 방식으로 만든다. (집전체, 도전재에 대해서는 배터리완전정복 24·26·27회 참고)
전극에서 바인더가 차지하는 비중은 질량 기준 5% 미만으로 크지 않아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차세대 배터리 기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바인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양극, 음극의 소재나 공법이 바뀌면서 최적의 성능을 낼 수 있는 바인더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바인더가 차세대 배터리의 문을 여는 주요 열쇠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바인더는 '접착제'…배터리 수명·용량과도 직결
바인더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구 사항을 만족해야 한다. 우선 오랫동안 사용해도 안정적인 접착력을 유지해야 한다. 또 전해질과 화학적, 전기화학적으로 부반응이 없어야 한다. 화학적으로 안정적이라는 말은 전해질과 산화, 환원 반응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전기화학적으로 안정적이라는 것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작동 전압 범위인 3~5V에서 분해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바인더는 전극 제조 시에 최고 200도의 고온에서도 견딜 수 있는 내열성을 갖추어야 하며 고압에도 깨지지 않아야 한다.
PVDF는 입자 사이를 선으로 연결해 접착력을 유지한다고 해서 선접촉형 바인더로 분류한다. SBR/CMC는 점접촉형 바인더에 속한다. 선접촉형보다는 점접촉형이 보다 고정력이 우수하다.
양극 활물질은 물에 잘 녹지 않기 때문에 수계 공정 대신 유기계 공정을 적용한다. 양극에는 주로 PVDF(Poly vinylidene Fluoride·폴리 비닐리덴 플루오라이드)가 유기 용매인 NMP(N-Menthyl-2-Pyrrolidone·노말메틸피롤리돈)와 함께 쓰인다.
두 물질은 전극 활물질 입자 및 도전재에 대한 분산성이 우수하고 결착력이 뛰어나다. 유기 전해질에 잘 산화하거나 환원되지 않고 안정적이다. 하지만 PVDF는 분자량이 증가하면서 슬러리의 점도도 함께 증가해 분산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또 고온에서 집전체와 전극 코팅층의 탈리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PVDF는 다양한 외부 환경에 견디는 내후성(각종 기후에 견디는 성질)과 내오염성 등이 우수해 태양전지 필름, 취수장 분리막 등에도 많이 사용된다.
음극에는 수계 바인더로 SBR(Styrene-Butadiene Rubber·스티렌-부타디엔 고무)과 CMC(Carboxy Methyl Cellulose·카복시메틸 셀룰로오스)를 혼합해서 사용한다.
SBR/CMC 바인더는 활물질과 도전재 사이를 점접촉 형태로 묶어주기 때문에 결집력이 우수하다. 하지만 차세대 음극재인 실리콘의 부피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바인더가 필요하다.
PVDF 바인더는 일본의 구레하(Kureha), 벨기에의 솔베이(Solvay), 프랑스의 아케마(Arkema) 등 해외 몇 개 기업이 과점하고 있다. 국내 기업으로는 켐트로스가 2019년 3월 한국화학연구원으로부터 PVDF 제조공정 기술을 이전받아 2021년부터 파일럿 라인을 통해 상업화를 위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SBR 바인더의 주요 생산 기업으로는 일본의 제온(Zeon)이 있다. 국내 기업으로는 한솔케미칼이 음극재 바인더의 국산화에 성공해 삼성 SDI와 SK온에 공급하고 있다. LG화학과 금호석유화학도 음극재 바인더를 생산하고 있다.
SNE리서치는 전 세계 리튬이온 배터리용 바인더 시장 규모가 2025년 8만9000톤에서 2030년 23만2000톤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액 기준으로는 2030년에 약 4조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건식 전극에 사용하는 PTFE는 어떤 물질?
기존 습식 공정에서는 슬러리를 집전체에 도포한 후 열풍을 이용해 NMP를 흡수하게 된다. NMP는 고가이고 환경 오염물질이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회수 후 정제해서 다시 사용한다. 한국에서 NMP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독일 바스프(BASF)와 미국 애쉬랜드(Ashland, 구 ISP)가 공급을 독과점하고 있다.
건식 공정에서는 NMP를 사용하지 않고 가루 형태의 활물질 혼합물을 바로 집전체에 코팅하거나 필름으로 만든 후 집전체에 붙이는 방식을 사용한다.
건식 전극 공정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바인더 소재가 PTFE(PolyTetraFluoroEthylene·폴리테트라 플루오로 에틸렌)이다. PTFE는 1938년 미국 화학 기업 듀퐁(Dupont)이 개발한 물질로, 상품명인 테플론(Teflon)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PTFE는 매우 강한 탄소(C)와 불소(F)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어 열에 강하고 내화학성이 좋다. 표면이 매끄러워 프라이팬 코팅재로 많이 사용되며 개스킷, 베어링, 컨테이너관의 내부, 밸브와 펌프 부품, 톱날 등에도 활용된다.
흰색 분말 형태인 PTFE는 2개의 상전이온도(transition temperature)를 갖는다. 19℃ 이상에서 응력(물체에 하중을 가했을 때 내부에 생기는 저항력)을 가하면 섬유화 (fibrilation) 현상이 일어난다. 30℃ 이상에서는 섬유화 현상이 더 활발히 발생한다.
PTFE의 이 같은 성질을 이용해 활물질-도전재-바인더를 혼합한 뒤 압출하면 용매 없이도 얇은 필름 형태로 만들 수 있게 된다. 테슬라가 4680 원통형 배터리를 개발하기 위해 인수했던 2019년 인수한 맥스웰(Maxwell)이 이 같은 방식으로 건식 전극을 제조한다.
실리콘 음극재에 맞는 바인더는 따로 있다
하지만 실리콘의 경우 충·방전 시 스웰링(swelling, 부풀어 오름) 현상이 심하고 SEI(Solid Electrolyte Interphase) 층이 불규칙적으로 형성돼 배터리 수명이 단축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탄소나노튜브(CNT) 도전재를 사용한다. (실리콘 음극재에 대해선 배터리완전정복 11회 참조)
이에 더해 최근에는 강한 고분자 바인더를 사용하면 충·방전 시 실리콘 음극재의 균열을 방지하고 배터리의 전기화학적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전극 소재들의 결착력을 높여주는 바인더를 통해 스웰링 등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리콘 음극용 바인더로 PAA(Poly Acrylic Acid·폴리아크릴산)나 PI(Poly Imide·폴리 이미드)가 주목받고 있다. PAA와 PI는 모두 수계 바인더로 기존 바인더에 비해 인장 강도와 접착력이 높아 실리콘 음극재의 부피 팽창을 억제한다. 또 활물질을 감싸서 안정적인 SEI층을 형성한다.
국내 기업으로는 애경케미칼이 실리콘 음극재용 바인더를 개발,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애경케미칼은 지난해 5월 고용량 실리콘계 음극용 바인더의 국내외 특허 등록을 마치고 국내외 고객사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애경케미칼은 삼성SDI와 공동 출원했던 실리콘 음극재용 고분자 바인더 특허를 2021년 6월 최종 획득했다.
유럽 PFAS 환경규제 변수
ECHA는 현재 PFAS 규제에 대해 지난해 9월까지 의견수렴을 거쳤으며 현재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EU 집행위원회에 최종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PFAS 규제는 EU 의회와 이사회에서 확정되면 전환 기간을 거쳐 2026~2027년부터 실제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와 국내 관련 기업들은 지난해 9월 PFAS 전면 규제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ECHA와 세계무역기구(WTO) 측에 전달했다. 과불화화합물은 이차전지뿐 아니라 반도체, 디스플레이에도 사용된다. 아케마, 솔베이 등은 PFAS 규제에서 불소중합체를 면제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최종 의견서에는 PVDF와 PTFE가 제외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의 손은호 계면재료화학공정연구센터장은 "최종 의견서에 PVDF와 PTFE가 포함될지는 대체재가 있는지, 유해성이 어느 정도인지 등이 기준이 될 것 같다"며 "두 물질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유해성이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과불화화합물은 자연적으로 잘 분해되지 않는 잔류성 유기 화합물의 일종으로 자연계나 체내에 축적될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인 과불화화합물로는 과불화옥탄산(PFOA)과 과불화옥탄술폰산(PFOS)이 있다. 프라이팬이나 냄비 등의 코팅에 사용되는 PTFE는 PFOA, PFOS 등과는 화학적 구조나 물리적 특성이 전혀 다른 고분자 물질이다. 프라이팬에 코팅된 불소수지 조각을 실수로 먹어도 체내에 흡수되지 않고 그대로 배출되므로 인체에 위해가 발생할 우려는 거의 없다.
<참고문헌>
고분자 고학과 기술, 이차전지용 기능성 고분자, 2016.6.3
식품의약품안전처, 과불화화학물에 대한 Q&A, 2017.3.23
Charged, Maxwell’s Teflon-fibrilizing electrode process could save Tesla big bucks on battery manufacture, 2019.3.21
ECHA, ECHA publishes PFAS restriction proposal, 2023.2.7
유진투자증권, 애경케미칼의 음극재 바인더, 2023.4.12
법률신문, EU·미국 PFAS 사용 규제, 2023.8.9
C&EN, The battle over PFAS in Europe, 2023.9.18
한국IR협의회, 켐트로스 2024년을 기다린다, 202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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