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에 부정적 의견을 가진 이들은 '암호화폐는 프로그램으로 얼마든 찍어 낼 수 있기에 내재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화폐란 것은 발행 주체 및 이를 가치적 도구로 인정하는 집단에 의해 특성이 결정된다. 우선 발행 주체에 대해 논의해 보자. 베트남 전쟁 등으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큰 폭으로 확대되고 오일쇼크까지 발생하면서 미국은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내기 시작했고, 결국 1971년 8월 닉슨 대통령은 ‘금태환제’를 포기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미국 중앙은행은 엄청난 양의 달러를 찍어내 부실 채권을 매입함으로써 통화량을 늘리는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했으며, 코로나19로 경제가 봉쇄됐던 2020년 3~4월에도 이러한 정책은 반복됐다. 이렇듯 기존의 법정화폐는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결정할 경우 언제든 돈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
암호화폐의 경우에도 프로그램을 수정하면 얼마든 돈을 생성해낼 수 있다. 다만 블록체인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를 정부나 기관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해당 암호화폐 사용자들 전체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나마 비트코인의 경우에는 총 발행량이 2100만개로 고정돼 있기도 하다.
두 번째로 화폐의 가치에 대해 논의해 보자. 미국 달러에서 볼 수 있듯이 화폐의 가치 및 안정성은 해당 화폐에 대한 신뢰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여기서 신뢰란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Sapiens)'에서도 언급했듯 정치, 사회, 경제가 결합된 매우 복잡한 관계의 산물이다. 비트코인의 경우 2021년 기준으로 전 세계 약 1억600만명의 인구가 보유하고 있으며, 일일 비트코인 사용자 수는 40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최근 블록체인 분야의 킬러 애플리케이션(앱)이라고 불리는 대체불가능토큰(NFT)이 등장하면서 사용자 수가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치의 안정성 측면에서도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한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 이미 존재한다.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USDT)’의 경우 1개의 테더를 발행하기 위해 1달러를 은행 계좌에 담보로 예치해야 한다.
이외에 암호화폐는 기존 법정화폐가 하지 못하는 부가적인 기능까지도 제공할 수 있다. 2세대 암호화폐로 불리는 이더리움의 경우 블록체인에 거래 기록 외에 다양한 컴퓨터 프로그램(스마트 컨트랙트)까지 등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시간이 지날수록 DApp, DAO, DeFi, NFT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마치 구글과 애플이 구글 플레이 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를 통해 앱을 자유롭게 업로드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줌으로써 스마트폰의 기능을 점점 더 다양하게 만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암호화폐를 단순히 내재가치가 없다고 폄훼하는 것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매우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얘기들이다. 우리가 애플의 앱스토어를 대단한 발명품으로 인정하고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암호화폐 또한 그렇게 평가되고 대접받아야 한다. 암호화폐가 단순 화폐의 기능을 뛰어 넘어 어디까지 진화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승주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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