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국내 VC의 아시아 진출은 중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중국 당국의 보이지 않는 규제,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돈이 묶일 수도 있다"는 우려 등 리스크가 증가하면서 선호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그 빈자리는 일본이 채우며 '대세'로 떠올랐다. 여기에 최근엔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 서남아시아의 인도가 또 다른 '희망의 땅'으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삼성벤처투자, 한국투자파트너스 등이 인도에 직접 투자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인도는 막대한 인구를 기반으로 내수가 탄탄하며, 대부분의 스타트업 창업자가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고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을 밀어준다는 공통점도 있다. 인도는 세계 인구 1위, 인도네시아는 4위의 '인구 대국'이다. SV인베스트먼트 관계자는 "두 나라는 중위 연령이 낮은 젊은 나라라는 점도 닮았다"며 "발전 가능성이 위로 무한히 열려있는, 그야말로 VC투자에 걸맞은 나라들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모두 중위연령이 30세 미만이다. 한국의 중위연령은 46세다.
유니콘 사라지는 한국…"투자할 만한 스타트업 적다"
'초기 투자' 수요가 해외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스타트업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새로 투자할 만한 매력적인 '뉴페이스'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해외로 관심이 점점 더 쏠린다는 얘기다. 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국내 VC의 신규투자에서 초기기업(업력 3년 미만) 투자 비중은 19.6%로 202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1년의 45.3%와 비교하면 반토막도 안 된다. 반면 같은 기간 후기기업(업력 7년 이상) 투자 비중은 44.9%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국내 시장에서는 '모험자본'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안정적인 투자를 지향하는 셈이다.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기업을 뜻하는 유니콘도 어느샌가 자취를 감췄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인 CB인사이트에 따르면 한국의 유니콘은 14개다. 인도(71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며 일본·인도네시아(각 8개)가 바짝 뒤쫓고 있다. 한때 3조원 이상의 '몸값'이 거론됐던 컬리의 경우 1조원 미만으로 기업가치가 추락하는 등 유니콘에서 탈락하는 사례도 속속 나온다. 국내 스타트업 역시 해외 시장을 돌파구로 보고 있다. 최근 구글플레이가 100명의 스타트업 대표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7.9%가 해외 시장에 진출했으며, 52.4%는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이 42.7%로 긍정적 응답(24.3%)의 곱절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