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한 컨퍼런스룸은 대미(對美) 투자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각 기업 관계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역대 통상교섭본부장들이 모여 미국 '스트롱맨'의 재집권이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안을 논의한 날이었다. 120개 좌석을 꽉 채운 이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전문가들의 발표 내용을 급하게 받아적었다.
역대 교섭본부장들은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스키니 리필(skinny repeal, 일부폐기)' 형식으로 축소될 수 있다", "기존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도 쉬운 선택 아닐 것" 등의 발언을 내놨다.어찌 보면 특별할 게 없는 발언에 기업 투자 담당자들이 총출동한 건 그만큼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국내 경제 전망을 좀처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어닥칠 통상 폭풍에 선제적으로 제방을 설치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실제 '레드 웨이브'를 타고 입법과 행정 권력을 모두 거머쥔 트럼프는 집권 1기 때보다 훨씬 더 막강한 권력으로 강력한 보호무역과 탈중국 기조를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조 바이든 정부가 시행한 반도체지원법(칩스법), IRA가 폐지되거나 축소되면 우리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의 피해는 당연한 수순이다.
보편관세라는 폭탄 또한 우리 기업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20% 보편관세부과 때 수출의 8%(448억달러)가 날아가고 국내총생산(GDP)은 최대 0.67%까지 쪼그라들 전망이다. 이날에도 통상교섭본부장들에게 질문 두 가지가 나왔는데, 그중 하나가 '보편관세가 미치는 일반적인 영향'이었다는 점만 봐도 기업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기업들에 트럼프 행정부는 확실한 '불확실성의 연속'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불확실성이 무조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위협과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미국의 강력한 '제조업 파트너'가 될 것이다.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도 이 자리에서 "미국이 제조업을 다시 살리려고 할 때, 마땅히 할 수 있는 파트너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너무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는 한 참석자의 소감처럼 '윈윈'을 고민할 때다.
당장 내달 4대 그룹 경영진들은 워싱턴DC를 찾아 미국 정·재계 인사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번 회의에서 기업인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주요 산업·통상 정책을 미리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한국이 가진 무기를 향한 '냉정'과 파트너와의 원활한 협상을 위한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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