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지하철·공사장 등 매일 이용하는 승강기
6년간 승강기 사고로 37명 목숨 잃어
최저가 입찰 탓에 안전보단 돈에 초점
위축되는 산업…안전 규정 지킬 여력 없어
편집자주승강기는 안전하지 않다. 승강기는 사고가 나면 추락해서 인명사고를 동반한다. 한국인은 매일 전국에 설치된 86만대의 승강기를 타는데, 최근 6년간 승강기 사고로 400명 가까운 인명 피해가 났고 그 중 37명은 목숨을 잃었다. 승강기 사고는 유지관리산업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승강기 안전 확보를 만들기 위해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3회에 걸쳐 짚는다.
#.올해 1월 22일 경기 평택시 고덕동 아파트 공사 현장, 엘리베이터 수리 기사 30대 A씨는 엘리베이터 통로 내부 벽면에 설치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고, 중심을 잃은 A씨는 4~5m 아래 지하 2층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는 현장에 출동한 구급 대원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올해 3월 23일 오전 7시 52분께 인천 남동구 구월동 소재 아파트에서 주민인 70대 여성 B씨가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사망했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타지 못한 채 목줄이 끼인 반려견을 구하기 위해 엘리베이터 문을 강제로 열려다가 지하 2층 바닥으로 추락했다.#.10월 14일 인천 중구의 5성급 호텔에서 엘리베이터 교체 작업을 하던 30대 C씨가 지상 12층에서 지하 2층으로 추락했다. 교체를 위해 철거 작업 중이었는데 그가 탄 상태에서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떨어졌다. C씨는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승강기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19년부터 올해 11월 현재까지 발생한 승강기 중대사고는 모두 369건이다. 전국의 승강기는 지난 9월 말 기준 86만60대. 여기에는 에스컬레이터 3만4980대, 무빙워크 5920대, 휠체어리프트 4687대가 포함돼 있다. 나머지 약 81만대가 엘리베이터다. 설치 대수를 감안하면 사고가 드물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승강기는 항공기처럼 사고가 발생하면 곧바로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 올해 들어선 사망 사고가 부쩍 늘었다.
11일 한국승강기안전공단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 현재까지 승강기 중대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9명이다. 승강기 사고 사망자는 2019년 3명이었지만 2020년 10명으로 크게 늘었다가 2021년 5명, 2022년 4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지난해 6명으로 다시 늘어났고, 올해는 이미 작년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승강기 사고 원인을 보면 이용자 과실이 절반에 가깝다. 이어 작업자 과실과 유지관리 업체 과실, 관리주체 과실 등이다. 이용자 과실로 인한 사고가 잦다고 하지만 책임을 피해자에게 넘기며 안전 교육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고가 이미 설치해 운행 중인 승강기에서 일어나는 만큼 이용자 과실이 중대사고로 이어지는 배경엔 관리상의 허점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제값을 들여 유지관리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엘리베이터 기사가 서울의 지하철역 외부 승강기 안전점검을 하면서 전기계통을 살펴보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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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원 드는 유지관리 4만원에 계약하는 현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4년 승강기 표준유지관리비'에 따르면 공동주택의 6층 기준 승객용 엘리베이터의 평일 낮 1회 유지관리 비용은 19만7000원이다. 통상 월 1회 점검을 하는데 이 비용에는 인건비와 교통비, 안전부품을 제외한 소모품비, 기술료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대기업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유지관리 입찰 가격을 3만~4만원 수준까지 떨어뜨렸다. 관리비가 오르는 것을 꺼리는 입주민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저가 경쟁을 펼친 결과다. 이런 경우 100% 최저가 입찰에서 유지관리 업체로 선정되기 위해선 4만원 이하를 써야 한다. 승강기 업계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유지보수 업무를 하며 수익을 내려면 표준 유지관리비의 70% 선인 13만~14만원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14만원'과 '4만원 이하'의 갭에서 부실 관리가 발생하고 사고로 이어진다.
한편에선 이 갭을 메꾸기 위해 편법이 동원된다. 업계 관계자는 "유지관리 계약 자체는 손해보는 조건에 따내고, 업계만 아는 자신들의 '룰'에 따라서 사용 연한이 차지 않아 교체하지 않아도 되는 부품을 미리 교체해서 수익을 남기는 방법이 동원된다"고 전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국내 엘리베이터는 정석으로 안전 점검이 이뤄지고 그에 따라 부품을 교체하는 정상적인 유지관리를 받지 못하는 셈이다. 이선순 한국승강기관리산업협동조합 전무이사는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해 "결국 주민과 유지관리 기업 모두 손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안전보다는 돈에 초점 맞춘 유지관리
승강기 안전을 위한 기본인 유지관리가 헐값에 이뤄지는 이유에는 국내 승강기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승강기공업협동조합과 한국승강기관리산업협동조합에 등록된 국내 승강기 제조 업체는 총 140사, 이중 중소기업이 133사다. 유지관리 서비스업체의 경우 대기업 8사, 중소기업 807사 등 815개 업체가 있다. 많은 제조 업체가 매출이 나오는 유지관리 서비스를 겸하고 있어 실제로 국내의 전체 관련업체는 860사 정도다.
시장 규모는 제조·설치분야 2조9548억원(57%), 유비보수·서비스분야 2조2760억원(44%)으로 5조2308억원 정도다. 여기서 현대, 오티스, 티케이, 미쓰비시, 쉰들러 등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의 매출이 전체의 90%인 4조7000억원가량을 차지한다. 나머지 10%를 두고 다퉈야 하는 800개 이상 국내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낮춰놓은 가격표를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
유지관리가 안전이 아닌 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현장에서는 제대로 점검이 이뤄지기 힘들다. 지난달 25일 찾은 서울 지하철 8호선 암사역사공원역 엘리베이터 정기 점검 현장, 이곳에서는 엘리베이터를 멈추지 않고 기기를 이용해서만 간단한 점검이 이뤄졌다. 부품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육안으로만 확인했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는 이용자가 많아 운행을 중단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승강기 안전운행 및 관리에 관한 운영 규정에 2명 이상으로 작업을 하도록 한 '2인 1조' 의무 규정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지관리 현장에 돈이 말라 사람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티스 출신으로 1987년부터 독자 기술로 엘리베이터 제조와 유지관리까지 하는 한진엘리베이터의 박갑용 대표는 "인적 자원이 한정된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없다"며 "용접하는 인력만 구하려고 해도 외국인이 아니면 60대 이상인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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