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외부평가기관이 산정…절차적 정당성 확보해야
합병 의사결정사후 책임·소액주주 보호 필요
이사충실의무·MoM 도입해야
합병가액 산정방식인 기준시가를 폐지하고 시장 자율에 맡기는 개선안이 추진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시장 자율에 맡기려면 복수의 외부평가기관이 기업가치를 매기도록 하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또 외부 평가기관이 기업이나 지배주주에 유리하게끔 기업 가치를 산정할 우려도 존재하므로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와 소수주주의 과반결의제(Majority of Minority·MoM)를 인수합병(M&A) 절차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1일 정부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법부무는 최근 국장급 실무회의를 열어 합병가액 산정방식의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 관계자는 "쪼개기 상장 등 합병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추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면서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을 발의하는 등 야당에서도 법 개정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정부 입장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12일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현재와 같이 기준가격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부분에 문제 제기가 지속적으로 있다"며 "일률적인 산식에서 산정하는 것이 실질가치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국제적 기준이나 시장 상황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선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두산 사례 등을 계기로 합병가액 산정방식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이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지난 2월 비계열사 간 합병에 대해선 당사자 간 자율로 가치를 매기고 외부 평가를 받도록 하는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과정에서 계열사 간 합병 비율이 소액주주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이 같은 방안을 계열사 간 합병에도 적용키로 검토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합병가액을 기준시가가 아닌 시장 자율에 맡기려면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만약 비계열사 간 합병처럼 회계법인 등 외부평가기관에 기업 가치 산정을 맡기는 방식을 도입하면 기업과 회계법인 간 유착이 우려돼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발주처가 기업이면 회계법인 입장에서 기업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고 이는 기업 혹은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가격이 매겨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폐해를 방지하려면 기업이 아닌 정부, 법원 등이 개입해 평가기관을 선정하거나 복수의 평가기관을 활용해 기업 가치를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재욱 대신경제연구소 대표는 "복수의 평가기관을 활용해 기업 적정 가치를 산정하는 방식이 기준시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방법보다 나을 수 있다"며 "다만 기업공개(IPO)처럼 적용한 밸류에이션 도출 방식 등 투자자가 납득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설득할 수 있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제언했다.법원이나 정부가 외부평가기관을 선정한다고 해도 결국 평가 주체가 회계법인이라는 점에서, 객관성을 담보하긴 어렵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회계법인 간 치열한 수주 경쟁을 고려하면 대기업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 같은 생태계를 감안해 이사충실 의무와 소수주주 과반결의제를 보완장치로 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합병은 주주 간 충돌이 첨예한 분야이기 때문에 주주 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하다"며 "이를 보완하려면 결국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와 소수주주의 과반결의제를 도입하고 이를 수행했느냐에 따라 면책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MoM 원칙은 소액주주 중 다수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절차다.
공시강화와 합병 비율 공정성을 시장에서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합병 목적, 합병 비율, 산출 근거를 공시해야 한다"며 "주주의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는 합병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합병유치청구권 도입, 합병검사인제도, 합병 관계자의 손해배생책임 인정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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