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K-우먼]첫 女 호암공학상 수상자의 조언…"여성 리더는 언제나 눈에 띄어야"

이수인 워싱턴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최초의 女 삼성 호암공학상 수상자
동양인 여성 차별 딛고 세계적 석학으로
설명가능한 인공지능 연구로 주목 받아
"여성 리더는 다음 세대에게 표본 돼야"

“여성 리더는 언제나 더 나서서 눈에 띄어야(visible) 하고, 강하게 목소리를 내야(vocal) 합니다.”


28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이수인 미국 워싱턴대 컴퓨터과학공학과 교수는 여성 리더들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선명함’을 꼽았다. 이수인 교수는 유년 시절부터 수재로 불리며 수학과 과학에서 탁월한 두각을 나타냈고, 지금은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AI)’ 연구를 이끌며 각종 권위 있는 상을 휩쓴 인물이다. 그는 누구보다 뚜렷한 삶을 살아왔지만, 앞으로 살아갈 여성 후배들을 위해 앞으로도 난관에 도전하고 차별에 맞서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수인 미국 워싱턴대 컴퓨터과학공학과 교수. 이수인 미국 워싱턴대 컴퓨터과학공학과 교수. 원본보기 아이콘

-연구 분야인 설명 가능한 AI란 무엇인가.

▲정답만 알려주는 AI를 설명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가령 각종 의학 정보를 AI에 알려주고 병이 생길 확률을 묻는다면 답만 얻게 된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AI의 답이 다를 수 있다. 만약 AI가 왜 그런 결과를 냈는지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구현하면 오류를 방지할 수 있다. 기존의 AI가 문제와 답만 있는 문제집이라면, 설명 가능한 AI는 일종의 해설집이다.

-설명 가능한 AI로 호암상 공학상을 받은 첫 여성이 됐다. 수상 당시 ‘좋은 과학자는 좋은 정치가여야 한다’는 말을 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나.

▲현대 과학은 팀 과학(team science)이다. 우리 연구실에서 나오는 모든 논문은 저자가 다수다. 좋은 과학자는 내 연구실 식구들을 먹여 살릴 자금 마련을 하는 게 기본이다. 또 능력이 우수한 연구자들을 이끌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이 바닥에서 잘하려면 ‘팔방미인’이 돼야 한다. 그런데도 보이는 것에만 몰두하고 인간관계 등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 학생, 동료, 교수들을 많이 봤다. 장기적으로 잃는 것이 많은 행동으로 보여 안타까웠기 때문에 수상소감으로 언급했다. 어린 학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는데 오히려 내 동료들이 ‘모든 과학자에게 적용되는 말’이라고 격려해줬다.

-한국은 그러한 팀 과학이 비교적 활발하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의 학자들도 중요성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협력을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활발히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미국은 서로 다른 학문 간의 협력도 다양하다. 연구 보조금을 주는 기관들도 융복합 학문에 더 많은 돈을 준다. 물론 배경이 전혀 다른 학자들이 협력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도 팀 과학을 격려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명문고등학교로 꼽히는 서울과학고를 2년 만에 졸업하고 KAIST 학년 때부터 논문을 냈다. 외부적인 시선으로 보면 탁월한 수재였는데.

▲초격차라는 말을 좋아한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기준이 존재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평하기도 하지만 불공평할 때도 있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일에 있어서는 초격차로 승부하자는 생각을 했다. 누가 봐도 뒤집기 어렵게. 그래서 카이스트 학부에서 만점에 가까운 학점으로 전자공학과 수석을 했고, 학부 3학년 때 삼성에서 논문 대상 금상을 받았다. 다만 이면에는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만큼 실패도 많이 했다. 중요한 것은 성공과 실패와 같은 단편적인 결과가 아니라 내 얘기다. 내가 인생에서 걸어온 길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다. 인생은 개인의 것이고 개인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성공 지표다.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은 없었나.

▲고등학생 때부터 여성이 10%인 환경에서 자랐고 다양한 성차별을 참 많이도 경험했다. 유학 초반에는 영어와 문화적 차이로 아주 힘들었다. 난 그저 영어 한마디 유창하게 못하는, 조용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 ‘남한’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여학생이었다. 그때는 BTS도 넷플릭스도 없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들어 본 못 사는 나라였을 뿐이다. 특히 백인 남자 선배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했다. ‘과학 발표는 그렇게 하는 게 아냐’라고 하면서 정작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더라. 지금 몸담은 컴퓨터 과학계도 여성 교수가 20%가 채 되지 않는다. 미국의 교수 채용 과정은 성과 위주고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요인이 없다. 그럼에도 남자 동료들로부터 ‘너는 여자라서 고용됐다’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러한 성차별은 어떻게 대처했나.

▲보여주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여성 리더는 언제나 더 나서서 눈에 띄어야 하고, 강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잘난 척하라는 게 아니다. 다음 세대 여성들에게 표본이 돼야 한다. 차별들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절대로 단시간 내에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은 다른 동양권 나라보다 낫지만 그래도 말도 안 되는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그럴 때는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제가 여성인 게 당신에게 문제가 되나요?’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은 여성의 이공계 진학률이 매우 낮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조심스럽지만 사회적 압박이 크다고 본다. 기성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의 역할, 가정에서 생기는 각종 인식 등. 가령 여성이 예술 분야에서 더 뛰어날 거라는 기대감 같은 편견들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공계 여성 자체가 적었고 호암공학상 수상도 더뎠다. 물론 여성이 유전학적으로 혹은 생물학적으로 어떤 분야에 적합하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되는 논리다.

-여성 과학기술인의 양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적극적 우대조치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AA)는 다양한 부작용을 가진다. AA는 매우 중요한 정책이다. 정책을 조정해 선발 과정에서 여성들을 더 뽑을 수는 있다. 하지만 편견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남성 동료 시각에서 보면 ‘백인 남자가 불리하다’는 말이 나오게 되고, ‘여자니까 뽑힌 것 아니냐’는 쓸데없는 오해를 만든다. 당장 AA를 철폐하자는 주장은 아니지만 여성이 아닌 사람에 집중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한국에서 이공계 학생들이 의대로 진학하려는 현상은 왜 벌어지고 있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보나.

▲물론 의대는 사람을 살리는 학문이고 인재들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 균형을 고려하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한국에서 유독 의대 광풍 현상이 생긴 계기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고 본다. 사람들이 순식간에 직업을 잃었다. 우리 아버지도 마찬가지고. 이후 라이선스가 있는 직업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의사가 되면 세상 살기 더 편리하다는 인식이 퍼졌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하는데 AI 분야의 인기가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AI 기업 대표들과 석학의 이름을 한국 사람들이 다 안다. 마치 셀럽처럼 여겨진다. AI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공학이나 다른 분야로의 진학도 늘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최근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깎았다가 복원하는 일이 있었다. 연구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연구개발 예산 삭감은 매우 불안한 현상이고 극도로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정말 놀랐다. 친구들이 교수다 보니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소식을 들었다. 내 동료는 연구개발비가 줄면서 대학원생을 내보내고 연구를 중단했다. 사비로 연구원 월급을 주는 교수도 있었다. 연구비는 과학자들에게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데 한국의 학계가 위축될까 봐 매우 걱정스러웠다. 미국과 중국 등 전 세계가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한 번이라도 벌어지면 과학계는 큰 타격을 입는다.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싶은지.

▲설명 가능한 AI를 통해 알츠하이머를 연구 중이다. 생물학 빅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유전자가 문제인지 연구하고 있다. 현재 알츠하이머 약이 두 개 정도 개발됐는데, 큰 효과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 본인과 가족들에게 큰 고통을 주는 질병인 만큼 해결에 기여하고 싶다. 노화에도 관심이 많다. 노화 연구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는 도전적인 과제다. 왜 세포는 늙고 변하는지, 어떻게 달라지는지, 노화 방지는 가능한지 알아보고 있다.

-어떤 연구자가 되고 싶나.

▲과학자를 ‘10년 후를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난 효과를 빨리 보고 싶다.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빨리 개발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

이수인 교수는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전자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인공지능을 바이오 분야에 접목하는 연구를 해왔다. 이후 인공지능(AI)의 판단·예측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설명 가능한 AI’ 분야 연구를 이끌었다. 올 초 국제생물정보학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혁신가상’을 수상했고, 지난 4월 여성 최초로 삼성 호암상 공학상을 받았다.




세종=송승섭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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