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타그램] 인연 없는 사진들과의 인연

인연 없는 사진 한 장을 몇 년간 앞에 두고 있었다. 그와 나 사이의 시공은 늘 텅 비어 있다. 인연이건 관계건 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텅 빈 우연만이 사진과 나 사이에 느슨히 자리 잡았다. 괜히 사진을 구해 달라는 부탁으로 친구를 귀찮게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들고 있는 것은 선원으로 보이는 외국인 남자의 오래된 흑백 사진 한 장이다. 이 사진과 함께 내게 온 다른 몇 장의 사진들에 비해 얼굴이 선명하고 시선이 정면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와 나 사이를 좀 더 직시해야 할 것 같은 인상을 주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게 어떤 말을 건네지는 않는다. 시선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남다른 유대가 만들어질 줄 알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나는 그 사진을 3년 넘는 세월 동안 책상 위 독서대에 기대 세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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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그 기간 그 사진의 물성이 익숙해지고 미약하나마 모종의 유대감이 생겼다면 생겼을 수는 있겠다. 사진은 보이는 이야기와 보이지 않는 이야기로 함께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런 기대는 막연한 상상의 공터를 나 혼자 하릴없이 걸어 다니는 일이었다. 찍은 사람의 감정적 흔적도 보이지 않고 추리로도 짐작으로도 피어오르는 느낌이란 게 없었다. 적어도 찍힌 지 50년은 족히 넘었을 사진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찍힌 사진일 가능성도 크다. 사진은 구체적 시간 정보를 담고 있지 않은 채 막연한 시간의 방향만을 지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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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이 땅의 누군가를 이 땅에서 찍은 것이라면 이야기의 진입 장벽이 낮았을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그는 아마도 이탈리아인이고 큰 배 위에 서 있는 선원이란 짐작 정도만 할 수 있다. 소매의 선이 세 개인 건 선장이거나 그다음이거나 하다는 표시일 것이다. 한 손에는 거의 다 타들어 간 담배가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고, 온화한 무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그가 손에 든 담배는 영원히 타들어 가고 있다. 영원이라는 추상명사와 타들어 가고 있다는 현재형 서사는 잠시 정지된 형상에 연속성을 부여할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사진을 두고 현재적 상상을 더하는 일은 모든 관객의 습관인데, 내 생각도 사진처럼 그 앞에서는 정지된 채 물끄러미 있었다.
오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자세. 약간의 긍지나 자부심. 이건 사진에 드러난 인물의 여백에 채운 나의 개인적 느낌이기도 하다. 흐린 흑백 사진의 인물에 콧수염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도 몇 년이 지나서다. 콧수염은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약간의 정보보다는 인물의 인상에 크게 기여했다. 오래 보면 이야기의 여백이 조금씩 채워지기는 한다. 누가 그 사진들을 내다 팔았는지는 물론 그 사진 속 인물들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이탈리아를 여행 중이던 친구가 아레초라는 지방 소도시의 골동품 혹은 풍물시장에서 나름 골라 집어 사다 준 사진들이다. 십여 년 전 로마에 출장 갔을 때 혼자 도시의 골목을 돌아다니다 수레에 옛 책들과 그림, 사진 따위를 쌓아 놓고 파는 벼룩시장 같은 곳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사진 뭉치들을 뒤적이다. 별반 느낌도 관심도 없던지라 아무것도 집어 들고 오지 않았던 것이 살짝 후회되었다. 예술가들이 우연히 발견한 타인들의 옛 사진을 모티브로 창작 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모방심리가 발동하기도 했던 것 같다. 별걸 다 아쉬워하고 살았다. 어느 날 친구가 로마를 여행 중이라고 페이스북에 자랑해 놓은 것을 보고 메신저로 옛날 사진 같은 것 파는 데가 있으면 몇 장만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고, 그는 로마가 아닌 아레초라는 도시의 풍물시장 같은 데서 파는 사진들을 여러 장 알차게 골라 사다 주었다. 이 사진은 그중 한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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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아니면 그보다 더 이전 시대에 찍힌 사진일까? 그 시기가 분명하다면 뭔가 연결될 수 있었을까? 그 또한 부질없는 상상일 뿐이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분석하지 말고 느끼라'는 말은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한데, 막연히 받아들인다는 것 또한 한 줌 실마리라도 있어야 그 상상이나 교류의 물꼬가 트일 것 아닌가 싶었다. 그 막막한 부재와 무인연의 바다에 이야기라는 돌멩이를 던져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아레초란 어떤 곳일까. 지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그가 살았을 법한 배경을 추리하는 것이 의미 있을까. 선원의 제복과 배의 갑판은 어울린다. 그 옆에 일부만 보이는 것은 배의 무엇일까. 분석하지 말자면서 구석구석 분석의 단서를 찾고 있었다. 나와 연결되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한동안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한참 후에 사진을 그냥 내가 알지 못하는 인간의 흔적과 이야기를 품은 흔한 단 하나의 사진 그 자체로 인정하게 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그 사진을 치워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가 사진을 담아 왔던 그 비닐봉지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와 지극히 건조하고 관계없음이 편안하다 싶었다. 결국 설화의 내용처럼 돌만 넣고 국을 끓이고자 했지만, 국은 끓이지 못하고 돌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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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년쯤 후에 그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 집어넣을 때 그랬듯이 다시 꺼낼 때도 뚜렷한 이유 없이 문득 생각이 났을 뿐이었다. 그와 나 사이는 여전히 텅 비어있는 듯하다. 손바닥만 한 사진 한 장으로 손끝에 닿아 있는 물성이 가장 큰 인연일 뿐이다. 다시 사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그 사진들 중 여러 장이 항구의 배에서 찍은 것들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생각하지 못했던 사진들끼리의 관계가 이제야 파악된 것이다. 군함도 있고 큰 여객선도 보이고 고깃배도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과 나의 인연이 아니라 그 사진들과 나의 인연은 은연중에 만들어져 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꺼내 다시 보니 반갑기도 하고, 기억하던 것보다 크기도 내용도 다양해서 '볼거리'도 있고 인간적이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뭔가 사진이 품은 인간의 흔적에 관해 이야기해 볼 수도 있겠다는 설렘도 생겨나는 것 같다. 사진 속 사람들과 통하겠다는 강박을 버리니 사진과 바깥 시간이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는 다른 사진을 꺼내 그 자리에 기대 놓았다. 군함 갑판에서 찍은 듯한 젊은 수병들의 기념사진이다. 정보를 넘어선 모종의 느낌인지 생각인지 들이 말이 되려면 한참의 관조와 방관이 필요할 것이다.




허영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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