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업계의 성장률 둔화 배경엔 일본이 지난 3월 마이너스 금리 종식을 선언했음에도 하락세를 이어간 엔화가 꼽혔다. 이에 명품 큰손인 중국인들이 엔저 혜택을 누리기 위해 일본으로 쇼핑을 떠났다. LVMH의 2분기 일본 매출은 57% 증가한 반면 중국에서는 부진을 겪었다.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을 보유한 스위스 소재 리치몬드와 같은 타 럭셔리 기업들도 일본에서 비정상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유럽 명품 업체가 일본에서 호실적을 보인 것은 결코 축복이라고 할 수 없다. 비용은 유럽 통화로 책정된 만큼 엔화 판매 매출은 수익성을 그만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세계 명품 시장에서 중국인 구매 비율은 26%이지만 그중 3분의 1 이상이 해외에서 소비된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명품 업체가 투자를 많이 한 중국에서 소비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엔화 약세가 글로벌 럭셔리 업계 고민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훨씬 더 우려스러운 요인은 중국의 일본화다. 중국 소비자들이 1990년대 거품 경제 붕괴를 겪은 이후 일본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중국 경제가 고통스러운 주택 시장 조정을 겪으면서 인내심을 갖고 합리적인 쇼핑객이 되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 소비자들은 미국, 유럽보다 앞서가는 듯 보였던 호황기 때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 브랜드로 치장할 여유가 없었다. 이 같은 겸손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가성비'라는 개념을 받아들였고, 이는 로컬 브랜드가 꽃을 피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1998년 일본 의류업체 유니클로는 미국 업체 파타고니아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의 플리스(양털) 제품을 출시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패셔니스타들도 저렴한 유니클로와 수년간 매일 들고 다닐 수 있는 명품 핸드백을 믹스 앤 매치해 착용했다. JP모건이 집계한 일본의 전체 수입 패션 매출에서 핸드백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4년 26%에서 2004년 43%로 크게 증가한 점은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일본의 스타일링은 최근 중국인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젊고 부유한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중국 내 플랫폼인 샤오홍슈에서는 인플루언서들이 백만장자처럼 보이지만 실제 돈이 많지 않은 일본인들처럼 옷을 입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헤어스타일, 피부 관리, 디테일이 중요하다는 게 핵심이다. 반면에 화려한 베르사체 드레스에 샤넬 핸드백을 매치하면 패션 감각이 없는 나이 든 부유층 여성을 비하하는 따마(dama·大母)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e커머스는 명품 소비 개념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일부 인플루언서와 패셔니스타들은 온라인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명품을 주문해 착용한 후 반품하기도 한다. 리치몬트의 럭셔리 이커머스 플랫폼인 육스(Yoox)가 급증하는 명품 반품으로 인해 타격을 받자 최근 중국에서 철수한 이유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상품으로 수백만 명의 소비층을 확보하고 중국 본토에 90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한 유니클로도 인플루언서들의 새로운 소비 패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유주인 패스트 리테일링 측은 최근 큰 폭의 수익 감소를 겪었고 소비자들이 더 저렴한 것을 대안으로 찾고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은 한때 자주 진행되던 유니클로의 세일 프로모션이 줄어들었다는 불만을 내놓는다. 그런 다음 다른 곳에서 비슷하지만 더 저렴한 상품을 찾는 방법을 온라인에서 공유하고 있다.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Big Luxury Frets That China Is Turning Japanese'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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