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국수자원공사가 화성국제테마파크 복합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신세계 그룹에 사업용지를 헐값에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공모지침을 어겨 신세계 측에 일종의 특혜를 준 셈인데, 지침을 준수했다면 그보다 2배가량 많은 토지분양대금을 받을 수 있었다.
8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감사원은 수자원공사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화성국제테마파크 토지공급계약 과정에서 과소평가된 감정평가액을 기초로 분양대금(3256억원)을 결정한 사실을 적발했다. 이에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감정평가액을 산출한 수자원공사 직원 3명의 징계를 요구했다. 법조계에선 이들의 행위가 수자원공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에, 신세계는 배임교사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수자원공사는 2018년 11월13일 자사가 보유한 부지를 매각하기 위한 ‘그린시티 화성 국제테마파크 복합개발 사업자 공모’를 냈다. 이듬해 2월28일 이마트 계열인 신세계프라퍼티(90%)와 신세계건설(10%) 컨소시엄이 단독 입찰에 나섰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후 양측은 사업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논의에 나섰는데, 이 과정에서 사업 공모지침을 위반한 사실이 밝혀졌다. 수자원공사가 공고한 공모지침(제38조 1항 및 4항)을 보면, 토지분양대금은 개발 사업자의 사업계획을 반영해 ‘그린시티개발 실시 계획’ 변경 고시가 완료된 뒤 감정평가를 통해 확정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체결된 사업협약은 신세계 측이 제출한 사업계획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신세계 측이 "공모 당시 제시한 입찰가 3250억원보다 토지분양대금이 크게 높아져선 안 된다"고 주장했고, 수자원공사가 이 제안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관광레저용지에 테마파크를 설치하고, 숙박시설과 판매시설(프리미엄 아웃렛), 운동시설(18홀 골프장)을 조성하는 내용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선 국토계획법 시행령에 따라 자연녹지지역인 해당 용지를 관광단지로 지정받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건폐율과 용적률이 높아지고 최고층수 제한이 없어지는 등 건축제한이 완화된다. 자연스레 토지분양대금도 비싸진다.
그러나 수자원공사와 신세계는 이런 변경 사항을 반영하지 않은 별도 사업협약을 체결해 감정평가액을 과소평가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정평가에 참여한 감정평가사도 미래 가치가 반영되지 않은 감정평가 기준에 이의를 제기했다. 감정평가법인 두 곳은 2021년 1월 수자원공사에 감정평가서를 제출하면서 "향후 유원지로 지정될 경우 허용용도 및 건폐율·용적률 완화 등 토지 가치 변화는 고려되지 않았다"는 별도의 의견을 달았다. 당시 감정평가에 참여한 감정평가사는 감사원에 "사업계획을 감정평가에 반영했다면 감정평가액이 최소 2배 이상은 상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신세계는 10년 전 호가(5040억원)보다 35% 저렴한 가격인 3256억원에 사업용지를 매입할 수 있었다.
화성국제테마파크 복합개발사업은 경기 화성시 송산그린시티 내 418만9000㎡(127만평) 부지에 미래형 첨단 복합도시를 건립하는 프로젝트다. 사진은 송산그린시티 내 국제테마파크 조성현장의 가림막.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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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헐값 매매계약은 양측 간 사전합의에 따른 것으로 취재 결과 밝혀졌다. 수자원공사가 개발 전 평가한 땅값은 3159억원이었다. 공모지침에 따르면 신세계가 최종 납부하게 될 ‘토지분양대금’은 개발 이익이 반영된 감정평가를 통해 다시 결정해야 한다. 이에 신세계 측은 두 평가액의 차이에 대해 서면 질의했고, 수자원공사는 "큰 차이가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신세계 측은 수자원공사에 ‘향후 평가될 감정평가액에 3% 인상된 가격으로 (토지분양대금을 납부해) 계약할 것’을 제안했고, 수자원공사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신세계는 우선사업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후 양측은 감정평가액을 낮추기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수자원공사 담당 직원들은 공모지침과 달리 건축제한 완화 효과가 반영되지 않은 감정평가의 문제점을 숨기기 위해 문건을 조작하기도 했다. 당시 담당 차장이던 A씨는 애초 공모지침에 따라 작성해둔 사업협약안에서 ‘사업계획서를 반영한 실시계획 변경 고시가 완료된 후 감정평가한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또 토지이용계획을 반영해 평가하도록 문구를 수정하라는 감정평가사의 자문을 받고도 이를 바꾸지 않았다. A씨는 감사원 조사에서 "(상관인) B부장에게 건축제한 완화 효과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보고했지만 ‘건축제한 완화 효과를 반영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듣고 제가 건축제한 완화를 반영하지 않기 위한 검토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했다. B부장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수자원공사는 감사원 요구에 따라 지난해 담당 직원을 징계했지만 형사고발 조치는 하지 않았다. 감사원 관계자는 "‘손해를 끼쳤다’라는 데 대해 법조계 해석과 감사팀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했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공공기관 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형사고발을 검토하기 위한 감사를 또 한 번 중복으로 할 수 없다"며 "감사원 조사 결과에 따라 징계 의결을 해서 마무리한 건"이라고 전했다.
신세계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개발 이후 땅값 상승분까지 반영한 감정가를 적용받는다면 공모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건축제한이 완화된다고 해도 감정평가액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수자원공사 서면 답변에 따라 상호 합의 아래 토지 용도별 면적 변경 등만이 포함된 사업협약안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공모지침에 따라 사업협약이 이뤄질 것으로 알고 응모 자체를 포기한 업체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했을 문제점을 지적했다. 감사원은 "공모지침과 다르게 사업협약을 체결하면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신세계컨소시엄이 유리하도록 감정평가 원칙을 변경할 것을 제안하더라도 수자원공사는 이를 수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수자원공사 담당 직원들의 행위가 형법상 배임죄, 신세계 측의 경우는 배임교사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다. 공모 지침에 어긋나는 거래로 수자원공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신세계는 부당한 제안을 해 이익을 얻게 된 수익자로, 배임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화성국제테마파크 복합개발사업은 경기 화성시 송산그린시티 내 418만9000㎡(127만평) 부지에 미래형 첨단 복합도시를 건립하는 프로젝트다. 사진은 송산그린시티 내 동쪽 주거단지.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원본보기 아이콘화성국제테마파크 복합개발사업은 경기 화성시 송산그린시티 내 418만9000㎡(127만평) 부지에 미래형 첨단 복합도시를 건립하는 프로젝트다. 여의도 규모의 1.4배로 총사업비는 4조5693억원 규모다. 신세계 측은 테마파크·워터파크·골프장, 1000실 규모의 호텔과 주거단지(공동주택 6283가구·단독주택 530가구)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2007년부터 추진됐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애초 경기도의 기획으로 유니버설스튜디오를 본뜬 5조원 규모의 리조트 사업이 수의계약 형식으로 추진됐지만 2013년 시행사 자금난으로 계약이 취소됐다. 이후 2015년 박근혜 정부의 대선공약으로 선정돼 재추진됐으나 2018년 수자원공사가 유니버설스튜디오코리아 컨소시엄과 사업 협약 기한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다시 중단 위기를 맞았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가 재추진하기로 하면서 다시 시동이 걸렸다.
신세계그룹이 2021년 3월 테마파크 건설을 위한 토지공급계약을 수자원공사와 체결한 데 이어 지난해 12월 화성시 등에 마스터 플랜을 공유하면서 사업은 제 궤도에 오른 듯했다. 그러나 해당 사업용지가 헐값에 매매된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나면서 사업 진행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이번 감사에서 적발된 땅은 그린시티 내 ‘관광레저용지(278만9540㎡)’다.
업계에서는 수자원공사가 공모 지침을 위반하면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배경으로 정치적 상황을 주목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선 공약 사업으로 재추진된 데다, 2018년 민선 7기 경기도지사로 당선된 이재명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사업 추진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수자원공사 내부에선 더 지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지사는 신세계 측이 수자원공사와 사업용지 매매계약을 체결한 직후 정용진 신세계 회장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 "사업의 차질 없는 추진과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현재는 수자원공사 감사에 따른 인사 조치 등 영향까지 더해져 행정 절차가 재개된다 해도 애초 계획된 2025년 착공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 측은 "수자원공사와 논의를 조속히 마무리해 행정 절차를 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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