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비트]'N개의 사무실', 일터를 바꾸는 세 개의 가치[오피스시프트](40)

다양성·유연성·창의성 가치 변화 인식해야
왜 똑같은 근무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가

편집자주[찐비트]는 '정현진의 비즈니스트렌드'이자 '진짜 비즈니스트렌드'의 줄임말로, 일(Work)의 변화 트렌드를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찐비트 속 코너인 '오피스시프트(Office Shift)'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시작된 사무실의 변화를 꼼꼼히 살펴보고 그동안 우리가 함께해온 실험을 통해 업무 형태의 답을 모색하기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콘텐츠가 될 것입니다. 매주 토요일 또는 일요일 여러분 곁으로 찾아갑니다. 40회 연재 후에는 책으로도 읽어보실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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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편일률(千篇需要·One-Size-Fits-All)'. 직장인이면 누구나 평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일괄 퇴근하는 일명 '나인투식스(9 to 6)'를 지키며, 대형 빌딩 속 고정된 책상 앞에 앉아 일하는 모습. 이러한 사무실의 형태는 우리 머릿속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모두 판에 박힌 듯 똑같아서 개성을 찾아보기 힘든 이런 근무 방식이 통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누군가는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하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시스템으로 자리를 선택한다. 사무실이 아닌 집이나 카페, 인근 공유오피스에 자리를 잡고 일을 시작하는 경우도 늘었다. 20여년 전 도입된 주 5일 근무제 대신 주 4일 또는 주 4.5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도 등장했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최적의 시간과 장소 개념이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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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더이상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코로나19 시기 재택근무가 모두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무실이라는 공간의 의미 변화가 모든 분야에 일괄 적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만난 여러 전문가는 근무 형태가 다양하게 변해가고 있음을 강조했다. 산업과 직종, 사회 인식의 변화, 신기술 등장까지 일하는 방식을 결정 짓는 요소는 수도 없이 많다.이러한 변화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시작됐다. 미국 IBM은 무려 30여년 전인 1980년 이미 시차출퇴근제를 도입했다. 삼성전자는 2009년 자율출퇴근제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변화에 속도를 더하는 계기가 됐을 뿐이다. 일하는 방식은 앞으로 더욱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근무 방식이 깨진 건 우리의 일터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기업과 직장인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가치를 이해하고 최적의 일하는 방식을 찾아 적응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현재 우리의 일터를 바꾸고 있는 세 가지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다양성'…각양각색 직원에게 맞는 근무 방식의 변화
'다양성(Diversity)의 시대'다. 다름을 차별하지 않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한층 중요해졌다. 인종, 성별, 문화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직원을 존중하고 개개인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절히 관리하는 것이 곧 회사의 경쟁력으로 작동한다. 지난해 포천 500대 기업 중 53%가 지난해 최고다양성책임자(CDO·Chief Diversity Officer)를 두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유연근무제 실험에 속도를 내온 SK그룹의 최태원 회장도 올해 2월 '2023 신임 임원과의 대화'에서 "다양성이 존재하는 조직은 생산효율이 20~30%가량 높다"며 "신임 임원은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관계를 만드는 역할 뿐 아니라 조직의 다양성을 대표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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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대세(大勢)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5월 공개한 '2023 일자리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채용 대행사 맨파워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Z세대 10명 중 7명이 다양성과 형평성을 바탕으로 한 근무 환경을 갖추지 않은 회사에 만족할 수 없다고 답했다. 또 Z세대 응답자의 56%는 경영진 구성이 다양성을 갖추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미래에 우리의 일터를 채울 Z세대가 여러 배경을 가진 직원을 인정하는 문화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다양성은 기업이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가치가 됐다.
각양각색의 직원이 모이다 보면 그들의 삶, 생활도 다양해진다. 일하는 방식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워킹대디부터 거주지를 정하지 않고 해외를 돌아다니며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디지털 노마드까지 다양한 직원이 존재한다. 기업에서 이렇듯 다양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천편일률적인 근무 방식 대신 각양각색의 일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연성'…자율과 선택권을 둘러싼 권력 투쟁
코로나19 기간 중 일하는 방식과 관련해 가장 주목받은 가치는 바로 '유연성(Flexibility)'이다. 그동안 사무실로 고정돼 있던 근무 공간이 뒤바뀌고, 육아 등을 병행해야 했던 상황에서 일하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근무 방식의 유연성은 바로 직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누군가는 육아하거나 아픈 가족을 병간호할 수 있고, 직원 중에는 아침에 집중이 잘되는 '아침형 인간'이 있는 반면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생산성이 높은 '저녁형 인간'이 있다. 특정 업무는 혼자 있을 때 집중이 잘 되고 일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수월하게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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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차이를 인정하고 직장인 개개인에 자율과 선택권을 부여해 스스로 유연하게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고 웰빙과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에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원격근무를 대대적으로 도입한 일본 통신기업 NTT의 야마모토 쿄코 총무본부장은 지난 4월 인터뷰에서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직원이 마음껏 일할 수 있게 되고, 일을 통한 성장을 실감하는 등 삶 자체의 만족도가 향상돼 웰빙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캐서린 파월 에어비앤비 글로벌 호스팅 총괄도 지난 5월 인터뷰 당시 에어비앤비의 '어디서든 자유롭게 살며 일하는 정책'으로 유연성과 선택권을 바라는 글로벌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연성과 자율, 선택권을 인정하니 직원은 직원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다만 미래의 근무 방식을 놓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유연성이라는 가치는 계속해서 이러한 권력 다툼의 중심에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책 '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쓴 데이비드 색스 작가는 지난 6월 인터뷰에서 "근로자들이 코로나19 시기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자신의 시간과 신체에 대한 엄청난 자유와 권력을 얻게 됐다"며 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노사 간의 권력 투쟁'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창의성'…장시간 노동 대신 휴식이 중요해진 이유

'창의성(Creativity)'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5월 한 보고서에서 "창의력이 새로운 생산성이 되는 시대"라고 표현했다. 직원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모든 기업 경영진의 지상 최대 과제다.


팬데믹을 계기로 주 4일 근무제가 기업 경영진의 이목을 이끈 건 바로 창의성 때문이다. 지식 산업이 발전하면서 단순히 오랜 시간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것보다 짧은 시간 일하더라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을 덜 하겠다는데도 경영진이 주 4일 근무제 실험에 속속 동참한다. 비영리단체 포위크글로벌의 세계 최대 주 4일 근무제 실험에 참여한 영국의 한 업체 대표는 "창의성은 휴식이 필요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 항상 창의적일 수 없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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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전 세계에 인공지능(AI) 열풍이 뜨겁게 불면서 기업과 인간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창의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이 더욱 강해졌다. 생성형 AI 기술이 업무에 적용되면 단순 반복 업무는 기계가 대신하고 인간은 창의력을 발휘하는 재미있는 일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이 기술 개발 업체들의 설명이다. 그렇게 되면 덩달아 불필요한 일을 하는 시간은 줄어 주 4일 근무제로 전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터져 나온다.
천편일률적인 근무 모두가 똑같은 형태로 일하는 구조에서 창의성이 나올 수 있을까. 어떻게 일해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속속 등장할까. 앞으로 전 세계의 기업과 직장인은 이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엔데믹(전염병의 풍토병화) 원년, 우리의 일터는 지금도 변하고 있다. 아직도 아마존과 메타플랫폼, 줌이 직원들에게 사무실로 나오라고 요구하고 직원들과 싸운다. 재택근무를 전사 도입한 네이버와 근무지 자율제 중인 우아한형제들, 주 4일 근무제를 일부 도입한 삼성전자, 워케이션 복지를 제공 중인 현대차까지 국내 대기업도 변화 중이다.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이 고민은 코로나19 종결로 마치 끝난 듯 보이지만, 끝나지 않았다. 다양성과 유연성, 창의성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전 세계는 앞으로 끝없는 논의를 치열하게 해 나가야 할 것이다.
N명의 직장인이 각자 최고의 성과를 내며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N개의 사무실'이 어디엔가 존재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보는 오늘이다.




정현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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